레노버는 지난 달 29일 스마트폰 제조사 모토로라를 인수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3일 LG전자 주가는 3% 넘게 떨어졌다.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등에 업고 점유율을 늘릴 경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와의 직접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6만원 중반 대에서 지루한 흐름을 보이던 LG전자 주가는 올해 외국인과 기관이 쌍끌이 매수에 나서며 7만원 회복을 눈 앞에 뒀다. 예상치 못한 레노버 반란을 만나며 주가는 또 다시 안개 속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 LG전자, 스마트폰 3위 달성 '중대한 변수'
이날 LG전자 주가는 개장과 함께 급락했다. 장 중 한 때 6만3600원까지 밀리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설 연휴 때 날아든 레노버의 모토로라 인수 소식에 연휴가 끝나자마자 주가가 출렁였다. 레노버는 29억1000만 달러(한화 약 3조1000억 원)를 주고 구글로부터 모토로라를 인수키로 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로 중위권 스마트폰 업체들의 경쟁 심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LG전자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고가에서 중저가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레노버의 이같은 행보는 간과할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레노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8%다. 모토로라 점유율 1.4%를 더하면 6.2%로 화웨이(5.1%)를 넘어 4위에서 3위로 올라서게 된다. 근소한 차이를 나타내던 LG전자(4.7%)를 크게 따돌리는 것이다.
점유율 30%대로 1위인 삼성전자, 10%대 후반인 애플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지만 LG전자를 비롯한 중위권 업체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레노버는 모토로라를 바탕으로 미국·중남미 시장 강화에 나설 것"이라며 "미국의 대표적인 IT브랜드인 모토로라와 2000개 관련 특허를 인수함으로써 얻게 되는 마케팅 효과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레노버의 제조 경쟁력과 모토로라와의 브랜드 시너지, 지역적인 확장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며 "스마트폰 점유율 3위 달성이라는 LG전자의 목표에 적신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A 추정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화웨이에 밀려 스마트폰 시장 3위 자리를 내줬다. 올해에는 화웨이와 레노버 등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3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이 기관은 전망했다.
이민희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레노버는 모토로라 인수를 계기로 해외진출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국내 업체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모토로라, 이미 '진 별'…파급력 미풍 그칠 수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모토로라의 영향력이 과거와 달리 미약하다는 점에서 레노버 인수가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레이저'시리즈를 앞세워 한 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2억대 판매 고지를 세웠던 모토로라는 스마트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추락했다. 2000년대 초중반 노키아에 밀리고 이후에는 애플, 삼성전자가 시장을 양분하며 존재감이 사라졌다.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은 1% 수준에 머물러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레노버와 모토로라 점유율을 단순 계산하는 것은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라며 "모토로라가 가진 경쟁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번 인수는 레노버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레노버의 모토로라 인수로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LG전자라기 보다는 또 다른 중국업체인 ZTE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한섭 SK증권 연구원은 "LG전자는 스마트폰 경쟁력을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경쟁심화에 대한 우려가 있겠지만 LG전자의 제품력과 부품계열사의 협력을 바탕으로 실적이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레노버의 모토로라 인수가 아니라 구글의 되팔기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도 있다. 구글이 이번 매각으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들과의 협력을 재확히 했다는 점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레노버에 팔면서 1만7000개에 달하는 모토로라 통신특허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애플 등 경쟁사로부터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보호하겠단 의지로 읽힌다.
이정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모토로라를 인수해 제조업에 진출하면서 협력업체들의 저항을 받았던 구글은 이번 매각을 통해 안드로이드 진영이 재결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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