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망언 선봉 하시모토 추락의 교훈

입력 2014-02-05 20:30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 안재석 기자 ] 총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가가 술렁이던 2011년 11월. 일본의 산케이신문과 후지TV가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질문은 단순했다. 일본 총리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 누구냐는 것. 조사 결과는 곧바로 화제가 됐다. 만 43세의 ‘새파란’ 정치인인 하시모토 도루 당시 오사카 시장이 15.6% 득표율로 기성 정치인들을 모두 제치고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하시모토 시장에게는 ‘차기 총리감’이라는 공식 명찰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한 달 뒤 치러진 선거에서도 하시모토의 위력은 이어졌다. 전체 480석 가운데 54석을 얻어 집권 자민당(295석)과 민주당(57석)에 이어 제3당이 됐다. 장래성만큼은 이미 실질적인 제1야당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한때 술집 여성과의 불륜설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그에게 큰 흠집을 내진 못했다. 그만큼 하시모토의 위력은 셌다.

겨우 2년여가 흐른 지금. 그는 만신창이가 됐다. 이미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작년 6월 도쿄도의회 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연패한 데 이어 작년 9월엔 텃밭인 오사카부 사카이시장 선거에서도 자신이 이끄는 일본유신회 후보가 낙선했다.

결정적 계기는 ‘위안부 망언’이었다. 그는 작년 5월 기자회견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정신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일본군에 위안부 제도가 필요했던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에는 “오키나와 주둔 미군 사령관에게 풍속업(매춘영업)을 활용해 달라고 조언했다”고 미군까지 걸고 넘어졌다.

그는 원래 그랬다. 2003년엔 “일본인이 (돈을 주고) 중국에서 매춘행위를 하는 것은 공적개발원조(ODA)와 같은 것”이라는 발언을 했고, 틈만 나면 “위안부가 강제연행됐다는 증거가 어딨느냐”며 한국의 속을 긁어댔다.

그의 되풀이되는 망언 시리즈는 결국 ‘망언 피로증’을 유발했고, ‘젊은 보수’에 열광하던 일본 유권자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자극적인 언사로 얻은 인기는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베 내각에서는 지금도 망언 릴레이가 한창이다. 하시모토의 추락이 교훈이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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