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대출심사…3000억 털렸다

입력 2014-02-06 22:16   수정 2014-02-0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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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자회사 직원이 사기
하나銀, 1600억…국민·농협銀도 당해



[ 류시훈 / 홍선표 기자 ] 하나·국민·농협은행과 저축은행들이 6년간 약 3000억원의 대출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어이없는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은 KT 자회사인 KT ENS 부장 김모씨가 협력업체들과 짜고 매출채권을 위조하는 방법으로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에서 총 3000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것을 적발했다고 6일 발표했다.

피해 금액은 하나은행이 1624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이 296억원씩이다. 나머지는 BS저축은행(234억원)을 비롯해 10개 저축은행이 피해를 봤다.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은 개인정보 유출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사기를 당한 게 드러나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금감원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KT ENS 자금담당자 김씨는 2008년 5월부터 협력업체인 N사 등 6곳과 짜고 통신장비 등 물품을 납품하지 않았는데도 한 것처럼 꾸며 허위 매출채권을 만들었다. 이를 N사 등 협력업체 3~4곳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넘긴 뒤 SPC로 하여금 은행에 매출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받게 하는 수법을 썼다. 허위 매출채권은 100여차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KT ENS는 처음엔 N사 등과 정상적인 거래를 하고 매출채권을 발행했다”며 “이후 거래가 끊어졌지만 은행들은 이를 모른 채 허위 매출채권을 진짜로 믿고 대출해준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금융계에서는 은행들이 KT ENS가 대기업인 KT 자회사라는 점만 믿고 매출이 실제 일어났는지, 총자산이 100억원도 안 되는 N사가 어떤 회사인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돈을 빌려줬다가 피해를 입은 사고로 보고 있다. KT ENS에 한번이라도 거래 여부를 확인했으면 막을 수 있는 사고인데도 안일한 심사체계에 빠져있다가 당한 사고라는 해석이 많다. 박세춘 금감원 부원장보는 “은행들이 대기업이라고 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는다면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는 사기대출을 주도한 김씨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대출사기를 공모한 협력업체 관계자도 조만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김씨에 대해서는 사기와 사문서 위조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할 방침이다.

류시훈/홍선표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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