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中 기업들의 무서운 약진…레노버, 모토로라를 품다

입력 2014-02-07 16:47  

[ 남윤선 / 김태완 기자 ]
중국의 정보기술(IT) 업체인 레노버가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사업부를 인수했다. 레노버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구글로부터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29억1000만달러(약 3조1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레노버는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3위로 올라섰다. 삼성, LG 등 국내 제조사들은 이번 계약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레노버가 모토로라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등에 업으면서 북미 시장 등에서 LG전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 레노버 "애플·삼성 넘어설 것"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인수하는 데 쓴 약 3조원은 미국, 유럽 시장 진입에 대한 ‘입장료’다. 최근 스마트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레노버는 모토로라의 ‘브랜드 이미지’를 노렸다. 2005년 레노버는 12억5000만달러에 IBM의 PC사업 부문을 인수해 IBM의 ‘싱크패드’ 브랜드를 활용, 글로벌 1위 업체로 올라선 바 있다. 레노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노리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을 확장하려면 북미나 유럽 시장에도 진출해야 하지만 레노버는 아직 ‘중국 저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레노버는 지난해 3·4분기 스마트폰 판매량 1220만대 가운데 88.5%인 1080만대를 중국 시장에서 판매했다. 레노버 스마트폰의 10대 중 9대 가까이가 안방에서 팔린 셈이다. 자국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중국 시장에서는 레노버 브랜드를 쓰지만 미국, 남미, 유럽 시장에서는 모토로라 로고를 박아 스마트폰을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50개 이상의 통신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것도 이득이다. 양위안칭 레노버 회장은 인수 직후 미국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년까지 스마트폰 판매량을 1억대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레노버와 모토로라의 스마트폰 판매 대수는 5500만대 수준이다. 양 회장은 “우리의 임무는 애플과 삼성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구글, 안드로이드 생태계 강화

구글은 2년 전 모토로라를 124억달러(약 13조3000억원)에 사들였다가 이번에 29억1000만달러(약 3조1000억원)에 매각하게 됐다. 10조원에 가까운 손해를 봤지만 얻은 것도 있다. 일단 적자 사업부를 팔아치우는 데 성공했다. 애플과 전방위적인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모토로라의 막대한 특허권도 챙겼다. 삼성 등 제조사와의 유대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보인다. 모토로라 사업부를 인수한 이후 구글은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로부터 “운영체제(OS) 업체가 하드웨어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눈총을 받아야 했다. 레노버가 스마트폰 시장 3위로 자리잡는다면 안드로이드 점유율 80%가 넘는 삼성전자를 견제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 LG에 타격 줄 듯

이번 대형 인수건은 국내 스마트폰 제조업체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미미해 점유율을 높이려고 애쓰는 LG전자에는 악재다. 레노버가 모토로라 브랜드를 이용해 북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의 순위는 5위로 밀려났다.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 시장 1위를 고수해야 하는 삼성전자에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난해 3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레노버는 점유율 13.6%로 삼성전자(21.6%)를 바짝 쫓고 있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모토로라를 등에 업은 레노버의 향후 공세 수위가 가늠이 안되는 상황에서 확실한 제품력만이 대응책이라는 입장이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애플처럼 우리 기업들이 시장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가 돼야 한다”며 “삼성이나 LG가 트렌드세터로 각인되려면 더욱 집중적인 기술개발과 마케팅 활동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기업과의 소모적인 가격 경쟁을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성숙시장에 접어든 스마트폰 시장에서 근본적인 생존의 길은 끊임없는 혁신뿐”이라며 “중국 기업과의 경쟁을 위해 코스트가 낮은 베트남 등으로 공장 이전을 확대하는 건 단기적 대책”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휴대폰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지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이 있는 고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베이징=김태완 특파원 inklings@hankyung.com

M&A와 철저한 현지화…레노버의 성장 동력은?

레노버의 성장 동력은 왕성한 인수합병(M&A)과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 벤처로 시작한 레노버가 연간 매출 300억달러(한화 32조원)에 ‘세계 1위 PC’, ‘세계 3위 스마트폰’ 타이틀을 거머쥔 공룡 정보기술(IT) 기업으로 거듭난 배경에는 공격적인 기업 사냥과 삼킨 기업에 힘을 실어주면서 적극적으로 융화하는 정책이 주효했다.

레노버는 1979년 ‘렌샹’으로 시작했다. 창업자이자 중국 벤처 1세대인 류촨즈 박사는 국영 중국과학원(CAS)으로부터 2만5000달러(약 2700만원)를 투자받아 회사를 세웠다. 지금의 양위안칭 레노버 최고경영자(CEO)는 1988년 렌샹이 ‘레전드(Legend)’란 영문 이름으로 컴퓨터 판매 사업을 할 당시 인턴사원으로 취직했다. 중국 저가 PC 업체에 불과하던 레노버가 유명세를 탄 결정적 계기는 2005년 IBM의 PC 사업을 인수하면서다.

이때부터 레노버는 크고 작은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현재까지 M&A에만 총 74억달러(약 8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이후에는 PC 너머로 분야를 확대한다. 2012년에는 미국 스톤웨어를 사들이면서 차세대 기술로 떠오르는 ‘클라우드’ 시장에 진출했고, 이달 초에는 IBM으로부터 서버 사업을 인수하면서 개인시장(B2C)에 이어 기업시장(B2B)으로 무대를 넓혔다.

레노버는 피인수 기업에 사업을 믿고 맡기다시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인수 기업 경영진이 곧 현지 전문가라고 보고 이들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레노버는 2011년 일본 NEC의 PC 사업을 인수할 때 당시 폐쇄 직전인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의 PC 공장을 그대로 활용하자는 NEC 측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를 계기로 레노버의 일본 PC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기도 했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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