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銀 총재 자격에 대한 허무맹랑한 소리들

입력 2014-02-09 20:28   수정 2014-02-10 04:24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차기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분이 좋을지 널리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한 이래 후보 10여명의 리스트도 나돈다. 언론들마다 차기 총재가 갖춰야 할 조건을 나열하기 바쁘다. 심지어 누가 1순위라고 실명을 거명한 보도까지 나올 정도다. 내정자가 발표될 때까지는 입소문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세간에서 거론하는 한은 총재의 자질에는 전문성과 독립의지에다 글로벌 역량과 소통능력까지 더해지고 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하나씩 조건을 더하다 보니 한은 총재라는 기관장을 뽑는 것이 아니라 경제금융을 다스릴 신묘한 귀신이라도 모셔와야 할 지경이다. 최근에는 최소한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이어야 하고, 국제기구나 투자은행(IB) 경력이 있어야 하며, 국제금융계 석학들과 개인적 연(緣)이 닿아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논의는 천박한 스펙론의 재연일 뿐이다. 더구나 음험하게 느껴진다. 후보를 제한하려는 누군가의 필사적인 노력이라고 보지만, 장차 한은 총재를 비판할 건더기를 미리부터 만들어 놓겠다는 냉소적 인물들의 고약한 논평 취향도 뒤섞여 있다.

그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김 총재를 연임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는 전임자들보다 해외출장을 3배나 더 다녔고, 버냉키든, 스탠리 피셔든, 트리세든 그 누구와도 언제나 속깊은 대화가 가능하다. 수준 높은 금융통화론의 내밀한 법칙과 비밀스런 기준들을 토론하는 데 있어서도 구름 위에서 논다는 분위기인 김 총재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하지만 김 총재가 금리정책을 제대로 운영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래도 동결, 저래도 동결이었고 뒷북이거나 마지못한 결론이었다. 소통능력자라는 말도 그렇다. 고급 영어를 소통능력으로 여긴다면 그야말로 구제불능적 착각이다. 한은 총재는 과연 누구와 소통해야 하는가.

한은법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한은의 기본 임무로 정하고 있다. 정치로부터의 중립이며 협조와 협력으로 따지면 정부를 비롯해 시장의 모든 세력들과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덕목이 스펙에서 나올 수는 없다. 총재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냉정성, 결단성, 균형감각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해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동시에 깊은 인물이라야 하는 것이지, 화려한 경력과 국제 사교계의 인맥은 더욱 아니다. 버냉키를 말하지만 끊임없는 화폐타락 외에는 그가 한 일이 별로 없다. 더 이상 무슨 스펙을 중얼거린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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