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도 떨게 만든 '큰 손' 투자자 … 기업 고민 깊어지네

입력 2014-02-11 14:46   수정 2014-02-11 14:56

[ 권민경 기자 ]
글로벌 기업들이 입김 센 '행동주의 투자자'들로 떨고 있다. 단순히 자금을 투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내는 투자자가 늘면서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대표격인 칼 아이칸은 미국 애플에 자사주 매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최근 여론에 밀려 요구 사항을 철회하긴 했지만 한동안 애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는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에는 자회사를 분사하라고 촉구했다. 일본 소니는 미국 헤지펀드 투자자인 서드포인트 압력에 PC 사업을 매물로 내놓았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투자자가 주주이익을 높이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지나칠 경우 중장기 경영 활동에 차질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언제든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았다.

◆ '기업사냥꾼' 아이칸, 애플에 자사주 매입 압박하더니

11일 투자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아이칸은 애플 주주들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오는 28일 있을 애플 주주총회에서 500억 달러(한화 약 53조6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추가 매입 계획 안건을 제출해 표 대결을 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애플 이사진을 향해 "현금 1500억 달러(한화 약 160조8300억 원)가 그냥 쌓여만 있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애플 이사회가 자사주 매입을 늘리지 않아 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 며 "주총 전에 투자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이칸은 이날 "우리가 요청한 자사주 매입 목표에 애플이 이미 근접했으므로 우리 제안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30억 달러 상당의 애플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 15명 안에 속해 있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애플이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애플은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며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에 대한 요구가 거세자 지난 달 실적 발표 후 140억 달러 어치의 주식을 매입했다. 이를 포함해 최근 1년간 애플의 자사주 매입 누적 규모는 4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아이칸은 이베이 지분 0.82%를 취득한 뒤 이사회에 자신의 직원 2명을 지명하기도 했다. 이베이 자회사로 최대 사업부 중 하나인 온라인 결제서비스 '페이팔'을 분사하라는 요구도 전달했다.

일본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소니는 최근 대주주인 미국 헤지펀드 서드포인트의 압박에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간판인 TV사업을 분사하고 '바이오' 노트북으로 상징되던 PC 사업은 매각키로 결정했다.

TV는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업체들에 밀려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PC사업은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판매량이 급감, 적자에 허덕였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은 주력인 두 사업에 손대는 것을 망설였지만 서드포인트가 구조조정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드포인트는 행동주의 투자자로 유명한 댄 롭이 설립한 회사다.

◆ 기업 몸값 올리지만…독립성 훼손 '양날의 검'

글로벌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방식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다우케미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달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댄 롭, 넬슨 펠츠와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처럼 생각해야 한다" 며 "경영진들이 이들의 방식을 고민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투자자가 M&A 과정에서 기업 몸값을 끌어올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미국 로펌 심슨대처앤바틀렛을 인용해 헤지펀드업계가 지난해 1~10월 M&A 대상 기업 14개의 몸값 올리기에 나섰으며 이중 10사의 가격 올리기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행동주의 투자자가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 오현석 이사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은 양날의 검과 같다" 며 "주주가치 제고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기업 경영의 독립성을 훼손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수준의 대규모 투자자인 이들의 목적은 오직 '이익'추구에 있다" 며 "단기 성과를 위해 장기 성장성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루 아침에 투자자에서 적대적 M&A 세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2003년 소버린의 SK그룹 주식 매입이나 2006년 아이칸의 KT&G 적대적 인수 시도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소버린은 보유 주식 의결권을 행사해 SK에 경영진 교체와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압박했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투자자들의 적극적 경영 개입은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을 때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며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지나친 개입이 일어날 경우 오히려 기업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해관계자들이 기업경영이나 투자에 참여하는 현상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며 "이를 어떻게 선순환적으로 바람직하게 끌고 나갈 것인지 기업들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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