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55→185 텡게로
"국가 재정 바닥났다"…작년 10월부터 위기설 돌아
현지 한국기업 200여곳 비상
[ 남윤선 기자 ]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이 11일(이하 현지시간) 자국 통화인 텡게화를 약 20% 평가절하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로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가며 외환보유액이 감소하자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카자흐스탄 수출업체들은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카자흐스탄 수출 금액은 약 10억7000만달러였다.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은 이날 오전 11시 텡게화 기준 환율을 기존 미국 달러당 155텡게(약 1066원)에서 185텡게(1272원)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번 평가절하는 전격적으로 단행됐다. 중앙은행은 “수출업체 경쟁력 향상과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통화정책을 급격히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2012년 역내 경제권 통합을 위해 카자흐스탄과 관세 동맹을 맺은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최근 계속 떨어지자 카자흐스탄도 통화 평가절하 압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급속히 줄어든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 텡게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것으로 분석했다. 마그밧 스파노프 카자흐스탄 경제혁신연구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국가 재정이 이미 바닥났다”며 “통화가치 절하는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평가절하는 지난해 텡게화 가치 방어를 위해 45억달러를 쓴 중앙은행과 카자흐스탄 수출업체들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다만 수입 물가가 올라가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한국 수출기업과 현지 진출 업체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현지 판매 가격 인상으로 중국 등 중저가 수입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는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은 채 물품 가격을 올린다는 공지를 붙이는 등 혼란스런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원영덕 현대자동차 홍보팀 차장은 “일단은 현지 딜러에게 수출물량을 운송해놓은 상태여서 당장의 영향은 없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일정 부분 손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현대차의 카자흐스탄 수출액은 8억8000만달러였다. 최승식 삼성전자 알마티(카자흐스탄 수도) 법인장은 “자세한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카자흐스탄 현지 거래를 모두 텡게화로 하고 있어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신석우 카자흐스탄 한국석유공사 소장도 “직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조학희 무역협회 전략연구실장은 “카자흐스탄 수출이 매년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며 “중소기업들의 수출도 적지 않아 피해가 확대될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카자흐스탄에는 삼성, LG, 포스코 등 대기업을 포함해 한국기업 200여개가 진출해 있다. 한국은 지난해 카자흐스탄에 10억7481만달러(약 1조1400억원)를 수출했다. 자동차가 4억5000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합성수지(약 7000만달러), 영상기기(약 5600만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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