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제로, 광풍의 시사점 … 일본이 위험하다

입력 2014-02-12 15:26  

[ 최인한 기자 ]
“우리와 싸우고 있는 상대는 인간이 아니야. 죽음을 무서워 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사지를 향해 몸을 던지네.” 소설 ‘永遠의0’의 머릿글에서 5인치 고사포 포수였던 미군 병사는 1945년 봄 미군함대를 향해 돌진하는 일본인 자살특공대원을 보면서 독백처럼 말한다.

극우 성향의 소설가 햐쿠타 나오키의 소설 ‘영원의 제로’ 광풍이 일본 전역을 휩쓸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살특공대원의 얘기다. 이 책은 2009년 발간 후 일본 출판계의 역사를 새로 썼다. 팔린 책은 350만 부를 넘는다. 출판왕국인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 역사상 최고 판매 기록을 세웠다.

350만 부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은 후지산(3776m)이다. 판매된 영원의제로를 쌓으면 높이는 후지산 20개에 해당한다. 옆으로 붙이면 일본의 고속철도인 신간선의 도쿄역에서 오사카역을 연결하고도 남는 양이다.

서적에 이어 영화시장에서도 ‘영원의 제로’ 바람이 불고 있다.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이 만든 영화는 작년 말부터 올 2월 첫째주까지 7주 연속 일본 영화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에서 금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매출을 기록한 ‘영원의 제로’ 현상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번지는 보수우경화, 국수주의 성향을 보여준다. 아베 신조 총리가 주도하는 보수우경화 흐름이 1회적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에 패전을 안겨줬던 2차세계대전,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역사였던 가미가제(神風) 특공대원들을 영웅으로 만든 ‘영원의 제로’는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가미가제 특공대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제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일본 해군의 함상 전투기를 보통 ‘제로 전투기’라고 불렸다. 연합군정식 명칭은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 일본 해군은 주로 제로센(零戰)으로 명명했다. 일본 해군은 96식전투기(A5M)를 대체하기 위해 1937년 10월5일 ‘12식함상전투기계획요구서’를 제시했다.

1938년 4월10일 미쓰비시가 제출한 A6M1계획을 일본 해군이 채택하면서 개발이 시작되고 1939년 3월16일 호리코시 지로가 설계한 A6M1 1호기가 완성됐다. 1호기는 1939년 4월1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1940년 7월24일 A6M1을 개량한 A6M2가 영식1호함상전투기1형(零式1號艦上戰鬪機一型)으로 채택됐다.

패전이 짙어진 1945년 초부터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은 비행기에 500kg 정도의 폭탄을 싣고 미군 함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미군 함선으로 돌진한 일본 전투기 조종사들은 17~24세의 새파란 젊은이들이었다. 자살 특공대원 수는 1024명에 달한다. 한국인도 11명으로 확인됐다. 많은 젊은이들은 정확한 영문도 모르고 전쟁터로 끌려와 반강제적으로 전투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2012년 말 총리에 취임한 아베 신조는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꽂다운 젊은 생명들이 스러져간 아픈 전쟁의 역사마저 미화하려고 한다. 강한 일본의 부활을 내건 아베 총리의 슬로건은 국민들 사이에서 먹혀드는 양상이다. 영원의제로가 인기를 끄는 배경이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 영국 등 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인기는 60%선을 맴돌며 고공행진중이다.

세계적 권위지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달 9일 아베 총리의 우경화 정책에 강한 우려감을 표명했다. FT는 ‘아베의 국수주의, 걱정스러운 전환’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아베 총리가 국수주의 어젠다를 더욱 강력히 추진하면서 일본 민주주의에 우려할만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하긴 어렵다. 문제는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인근은 세계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이권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20여년 만에 경제가 본격 회복 조짐을 보이고, 다시 군사대국화를 향하고 있는 일본. 총리를 필두도 60% 이상의 국민들이 국수주의화하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을 결코 가볍게 봐선 안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는가.
한경닷컴 최인한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


한경닷컴 최인한 기자 janus@ha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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