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베브와 '뉴욕라인' 갖고 있던 KKR
하이마트로 한국 유통시장 꿰뚫은 어피니티 '환상의 조합'
이 기사는 02월06일(05:1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운칠복삼’과 ‘고통 불변의 법칙’. 박영택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부회장이 기업을 사고 팔 때 입버릇처럼 말하는 두 가지 원칙이다. 언뜻 상반되는 듯한,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이 말 속에 4조원의 차익을 남기고 오비맥주를 매각한 그의 투자 철학이 또렷이 담겨 있다.
2009년 MBK파트너스-롯데 컨소시엄을 제치고 인터브루(현 안호이저부시 인베브 그룹)로부터 18억달러에 오비맥주를 인수한 뒤 불과 4년 여 만에 58억달러를 받고 인베브에 재매각하기로 한 것은 천운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사모펀드 역사에 길이 남을 이번 딜이 순전히 운에 의존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박 회장을 위시해 이철주 사장, 이상훈 전무 등 한국 담당 ‘멤버’들은 운을 ‘대박’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이 쉬웠으면 끝에 가서 고통과 노력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고통 불변의 법칙’이 오비맥주의 사례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어피니티와 KKR가 2009년 오비맥주를 인수할 무렵, 여러가지 상황들이 유리하게 맞아떨어졌다. UBS캐피탈 아시아퍼시틱팀에서 2005년 분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피니티는 KKR과 오비맥주 거래 한 해 전인 2008년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당시 어피니티는 만도를 매각하려고 나선 ‘셀러(seller)’였고, KKR는 인수 후보자들 중의 하나였다. 결국 KKR는 한라그룹과 H&Q AP코리아 컨소시엄과의 대결에서 패배해 만도를 품에 안지는 못했지만 여러차례 실무 협상을 하면서 박영택 부회장을 비롯해 이철주 사장, 이상훈 전무 등 한국팀과 조셉 배 KKR 아시아퍼시틱 대표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게 된다. 조셉 배는 KKR 전체 조직 내 에서 회장을 포함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만도 인수에 실패하자 KKR는 인베브가 내놓은 오비맥주 인수에 곧바로 뛰어들었다. 당시 오비맥주의 주인은 벨기에 맥주회사인 인베브로 이 회사는 1998년 오비맥주를 두산그룹으로부터 사들였다. 오비맥주를 매각할 때 즈음엔 미국 안호이저부시와의 합병을 막 끝낸 무렵이었다. 520억달러의 자금을 투입한 터라 안호이저부시 인베브그룹은 현금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오비맥주를 M&A 시장에 내놨던 것이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2009년에도 오비맥주는 매년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회사였다”며 “인터브루로선 오비맥주를 팔면서 굉장히 아쉬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피니티와 강력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MBK파트너스와 국내 주류 시장을 평정하겠다고 나선 롯데그룹이 입찰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어피니티 역시 ‘세기의 딜’이 될만한 오비맥주 인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때부터 KKR과 어피니티의 관계가 급진전된다. 나중에 확인되겠지만 두 사모펀드 운용사의 만남은 환상의 조합이었다. 제롬 콜버그, 헨리 크래비스, 조지 로버츠 등 세 명의 창업자 이름의 첫글자를 따 1976년에 출범한 KKR는 운용 자산 규모가 50조원 안팎에 달하는 글로벌 금융 재벌이다. 1998년 RJR 나비스코를 LBO(차입매수) 기법을 도입, 251억달러에 인수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KKR는 인베브 그룹 주요 경영진과 ‘뉴욕 라인’을 통해 긴밀하게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MBK파트너스나 롯데, 심지어 어피니티조차 못 갖고 있던 장점을 보유하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KKR는 한국 시장에선 ‘초짜’나 다름없었다.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 관심을 갖고 조셉 배를 내세워 아시아태평양팀을 만들긴 했지만 조력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례로 2012년 말에 을지로 미래에셋타워에 사무실을 마련하기 전까진 신라호텔이 KKR 한국팀의 ‘거처’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피니티는 KKR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만도 거래를 통해 서로에 대해 신뢰를 쌓은 데다 어피니티는 하이마트, 더페이스샵 등 한국에서 유통과 관련한 대형 거래들을 이미 수차례 성사시킨 경험을 갖고 있었다. 박영택 부회장만해도 19년간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며 소위 한국적인 기업 관행에 정통한 인물이다. 게다가 박 부회장은 만도 거래를 통해 애초 매각자(한라그룹)에 되파는 '콜옵션 거래'를 이미 한차례 경험한 터였다. 어느모로 봐도 어피니티는 KKR에게 오비맥주 인수 후 전략의 밑그림을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였던 셈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