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타이밍의 CEO 선임도 '효과'
이 기사는 02월07일(08:5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오비맥주 인수와 재매각에서 KKR이 속된 말로 ‘찍새’였다면 어피니티는 철저하게 ‘닦새’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100명 이상의 C-레벨(CEO, CFO 등 경영인 출신)급 경영전문가들로 구성된 KKR의 사내 컨설팅 조직인 캡스톤의 경영 진단과 함께 이철주 대표, 이상훈 전무 등 어피니티 한국팀들이 오비맥주 인수 후 즉각 투입돼 '밸류 업'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2007년 하이마트를 유진그룹에 넘기면서 인수 2년 만에 1조원가량 차익을 냈고, 더페이스샵도 인수 후 급성장시키는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나중 일이지만 어피니티는 2010년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매각해 투자원금의 5배 가량 수익을 냈다.
◆독립 경영의 효과
오비맥주를 접수한 직후, 어피니티 한국팀들은 부산 등 전국 도매상 20여 곳을 일일히 찾아다니며 ‘인베브 치하 10년’의 공과를 철저히 검증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랬다. 글로벌 그룹인 인베브가 오비맥주를 ‘숫자’로만 경영하려 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한국적인 기업 관행이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글로벌 기준에 오비맥주를 억지로 끼워맞추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비맥주는 인베브 그룹의 매트릭스 조직에서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오비맥주 CFO(최고재무책임자)는 국내 CEO(최고경영책임자)에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인베브 그룹 아시아태평양 지역 CFO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생각보다 뿌리 깊었다.
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원가 절감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오비맥주도 예외없이 동참해야했다. 원료 구매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때도 있었지만 이같은 ‘숫자 경영’은 한국적 기업관행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일례로 부산 지역 도매상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아태 본부에 보고를 올리면 그쪽에선 그 말의 뜻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하이트진로와의 경쟁에서 마케팅과 영업력을 키우기 위해선 ‘접대비’가 필요했는데 이를 용인해 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직원들도 위험을 굳이 감수하려 들지 않았다. 10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투자를 해야한다고 보고하면 ‘윗선’에선 ‘투자 후 예상되는 성과는 얼마인 지 산출한 뒤 재보고하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어피니티는 10년 간 누적돼 온 비효율을 파악한 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숫자 경영’을 ‘독립 경영’으로 바꾼다는 게 골자였다. 국내 대기업을 포함해 수십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사모펀드는 오로지 투자 기업 한 곳의 경영 성과만 내면 그만이었다. 예컨대 대기업 계열사 사장은 무엇 하나 결정하려고 해도 다른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야 하고, 혹시나 겹치는 사업이 없는 지 등을 포함해 경영외 ‘정무적’인 사항들까지 고려해야했지만 사모펀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CEO 선임 '신의 한 수'
어피니티는 진로 출신 영업의 달인인 장인수 현 오비맥주 대표를 2010년 1월 CMO(최고마케팅책임자)로 영입하는 등 경영기획 임원 소수를 바꾸는 것을 제외하고 이호림 사장 등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유임시켰다.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의 실책은 엄중히 따지되,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이에 관한 일화 한 가지. 어피니티와 KKR이 오비맥주를 인수했을 무렵, 이호림 사장은 무려 16개의 직보 라인을 갖고 있었다. 모두 영업, 마케팅과 관련한 보고 조직으로 16군데로부터 매일, 수시로 보고를 받다보니 사장의 하루 일과는 회의만 하다가 끝나기 일쑤였다. 문제점을 파악한 어피니티는 곧바로 사장 보고 조직을 3분의 1로, 사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축소시켰다.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하이트진로에 밀려 30%대로 떨어졌던 시장 점유율이 뒤집히며 2011년엔 오비맥주가 1위를 탈환했다. 2009년 8161억원이던 매출액은 2011년 1조원을 돌파했다.
어피니티와 KKR은 용인술에서도 단호함을 드러냈다. 시장 1위 탈환이라는 실적을 남긴 이호림 사장을 경질시키고, 장인수 사장을 신규 선임했다. 2012년 6월 인사를 발표하면서 오비맥주측은 “리더십의 변화와 더 큰 도약을 위해 변화의 시기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군기 잡기’에 능숙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이호림 사장이 위기의 오비맥주를 턴어라운드시키는데 적합한 인물이었다면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고졸 신화’ 장 사장이 더 적합했다고 판단한 것.
장 사장의 선임은 하이트진로의 상황과 비교해봤을 때 더욱 의미가 있었다. 당시 하이트진로는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하면서 두 조직 간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갈등의 배경은 주류 영업에서 최고로 일컬어지던 진로계가 뒤로 밀리고 하이트 출신들이 임원진을 장악한 데 있었다. 하이트진로는 잘 나가던 ‘맥스’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갑작스레 ‘디’라는 또 다른 브랜드를 출시하는 등 마케팅에서도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비맥주는 진로 출신 영업의 달인을 수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장 사장은 오비맥주에 영입될 때 진로 출신 핵심 영업맨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2009년 어피니티가 오비맥주를 인수할 당시 1.6억달러 남짓이던 EBITDA는 2013년 말 5억달러(5290억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시장 점유율도 60%로 도약했다. 어피니티, KKR이 인베브그룹에 오비맥주를 재매각하기로 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 바로 이때 즈음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