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포르노소설이 프랑스 혁명의 불씨 됐다

입력 2014-02-13 21:44   수정 2014-02-14 03:41

책과 혁명 / 로버트 단턴 지음 / 주명철 옮김 / 알마 / 600쪽 / 3만2000원


[ 박한신 기자 ]
“귀하가 주문한 책 가운데는 철학 분야의 책이 많습니다. 현재 우리 회사에는 이런 책이 없지만, 다른 서점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덕택에 차질 없이 공급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이 다른 책보다 더 비싸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정상가보다 비싸게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귀하를 위해 될수록 가장 좋은 조건으로 물건을 구해 드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이 우리 주변에서 지금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73년 프랑스의 뇌샤텔출판사가 보르도의 고객 베르주레에게 보낸 편지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철학책이 맞을까. 과연 프랑스혁명 직전에는 계몽주의 철학을 담은 책들이 많이 유통돼 혁명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던 걸까. 그런데 왜 이들 ‘철학책’ 중엔 《방황하는 창녀》《귀부인들의 아카데미》와 같은 외설적 제목과 《2440년》 같은 공상과학적 제목이 많을까.

한국에서도 널리 읽힌 《고양이 대학살》등을 써낸 미시·문화사 분야의 석학 로버트 단턴의 저작 《책과 혁명》은 프랑스혁명 직전 프랑스 대중 사이에서 널리 읽혔던 베스트셀러들을 조사하고 이 책이 어떻게 혁명을 이끌어냈는지 분석한다.

당시 ‘철학책’을 일컬을 때 철학이란 ‘업계에서 금지된 것을 표현하기 위한 관습상의 표현’이었다. ‘철학책’은 사실 포르노그라피, 공상과학 소설, 정치적 중상비방문 등을 의미했다. 물론 루소와 디드로 등의 진지한 전집들도 많이 팔렸지만 단턴은 전자와 같은 책들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세상을 전복시켰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현대인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집합을 각 시대의 문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과거 사람이 실제로 경험한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계몽사상가 테레즈》는 제목과는 달리 포르노그라피적인 소설이었다. 성직자가 종교적으로 여자 신자를 유혹해 성욕을 채운다. 그리고 여성 또한 이를 원한다. 당시 여성에게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공포였던 임신에 대한 두려움, 도덕적 평판에 대한 두려움을 성욕이 이긴 것이다. 단턴은 이 소설을 반(反) 교권주의와 여성의 주체적 선택을 상상하게 만든 중요한 저작으로 소개한다.

“이 책은 성욕을 자극하는 문학이 한꺼번에 분출하는 시대에 속하는 동시에 지적 지형도가 바뀌는 시대에 속하기도 했다. 사실 두 방향의 폭발을 일으킨 원동력은 하나였다. 그것은 자유로운 사고와 자유로운 삶을 결합한 자유사상이었다. 이 사상은 성적 규범만이 아니라 종교적 교리에도 도전했다.”

저자는 또 당시보다 700년 뒤 파리를 그린 공상과학 소설 《2440년》도 소개한다. 미래를 기정사실화하고 현재를 아주 먼 과거로 설정함으로써 현재 사회의 부패상을 극대화했다. 플라톤과 토마스 모어 등이 ‘이상향’들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사회를 상상했고, 대중들은 이런 세계를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얻었다.

현재에 기반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벗어나 18세기 프랑스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유럽, 나아가 세계를 바꾼 혁명이 이른바 ‘나쁜 책(mauvais livre)’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사소함’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케 한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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