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모'시대 도래
40대 미만 男, 성공보다 가정 중시
글로벌 기업, 육아 ≠ 여성몫 인식
일·가정 균형 맞춘 환경 만들어
미국의 여성전문지 ‘워킹마더(Working Mother)’는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매년 선정한다. 지난해 상위 10개 기업으로는 P&G, IBM, 제너럴밀스, 딜로이트 등이 꼽혔다. 제품 혁신을 위해 구성원들에게 전문적인 역량을 요구하고, 업무량도 녹록지 않은 기업들이다.
이들 글로벌 기업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기업을 왜 주목해야 할까. 우선 일과 가정의 불균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노동시장에서 맞벌이 부부는 57.5%를 차지한다. 한국도 배우자가 있는 가구 가운데 맞벌이가 43.5%(2012년 기준)로 외벌이가구 42%를 앞질렀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직 내 여성 인력이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거처럼 직장에 모든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구성원이 점점 줄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아이가 아플 때 휴가를 내는 남성 직장인도 늘어난다. 남성에게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해진 셈이다. 가족의 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의 가정직장연구소(FWI)가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0대 미만 직장인 대다수는 ‘행복한 가정’을 ‘직장 내 성공’보다 우선순위로 꼽았다.
국내에서도 ‘아빠 육아’가 부상하면서 부성애가 지난해 문화시장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이제는 남성 스스로도 바뀌고 있다. 권위적일 뿐 아니라 자녀와 감정적 교류가 없었던 과거 아버지는 역할 모델에서 물러나는 추세다. 가족의 가치가 강조되면서 아빠도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일과 가정의 불균형은 기업의 성과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일과 가정을 둘러싼 구성원의 갈등이 커지면 단지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업무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구성원 이직이 늘어나고 생산성도 저하된다. 이직률이 높고 업무 강도가 센 정보통신업계에서 대기업들은 이미 발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구글 등은 기업 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거나 세탁, 자동차 관리, 육아 지원, 법률 자문 등의 서비스를 사원에게 제공한다. 가정과 일의 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고 구성원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제 한국 기업도 법적, 사회적으로 가족친화경영 도입 추세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2007년 가족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여기서 기업이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가족친화경영을 ‘여성’의 이슈로 접근하지 말고 ‘일하는 부모’의 생산성 문제로 봐야 한다. 글로벌 기업은 가족친화경영을 가족의 문제라는 관점으로 보는 반면 국내 기업은 여전히 여성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기업과 구성원이 윈윈하기 위해선 ‘남녀 이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회사에 쏟았던 과거 업무 방식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업무에 몰입한 채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박지원 <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jwpark@lgeri.c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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