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정리해고 死文化?…노동시장 유연안전성 '먹구름'

입력 2014-02-14 19:33  

쌍용차 대량해고 무효 판결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는 7일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쌍용차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거나 해고 회피 노력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 2월8일 연합뉴스


5년여간 계속된 쌍용차 사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2라운드를 지났다. 1라운드에선 사측이 승소했지만 2라운드에선 법원이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측이 상고 계획을 밝히고 있어 노동자들의 해고가 정당했는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대법원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쌍용차 사태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판매 부진과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하반기부터 현금 보유액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던 쌍용차는 이듬해 1월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이어 3개월 뒤 회사는 한 회계법인에 의뢰한 경영진단에 따라 전체 인력의 37%에 달하는 2646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노조에 통보했다. 이에 반발한 노조는 2009년 6월 총파업에 돌입하고, 이후 77일간 평택 공장을 점거한 노조와 이들을 진압하려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로 노사 모두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여러 차례 노사 협상 끝에 희망퇴직자들이 속속 회사를 떠났고 165명이 최종 정리해고됐다. 이들 가운데 153명은 쌍용차가 인도의 자동차업체 마힌드라로 넘어간 2010년 11월 서울남부지법에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1년여가 지난 2012년 1월 법원은 “유동성 부족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회생절차를 밟게 된 만큼 해고를 단행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었다. 노조는 이에 불복, 서울고법에 항소하는 한편으로 거리로 나와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이어 이번에 서울고법이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측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쌍용차는 2013년 3월 노사 합의에 따라 무급 휴직자 455명 전원을 복직시켰다. 또 해고무효소송과는 별개로 지난해 11월 법원은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인 노조원들에게 46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 역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정리해고 불가피했나’가 쟁점

정리해고란 경영이 악화된 기업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할 때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제도다. 하지만 기업들이 아무 때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고 △회사 측이 해고 회피 노력을 해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별하고 △노조 등에 해고 50일 전까지 통보 후 성실 협의 등 4가지 요건에 해당해야만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과 2심에서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것은 당시 쌍용차가 경영상 긴박할 정도로 정리해고가 필요했느냐에 대해 법원이 달리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요건은 근로기준법 제 24조에 명시돼 있다. 1심에선 ‘정리해고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본 반면 2심에서는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도 1심은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지만 2심에선 일정 노력을 한 것은 인정되지만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신차종 계획 회계 반영도 논란

또 다른 쟁점은 회계장부의 조작 여부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2012년 2월 회사 측과 외부감사를 맡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회사 측과 회계법인이 설비 공장 등 유형자산의 장부가격을 낮추고 손실 규모를 부풀려 이를 2009년 정리해고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핵심은 신차종 계획이 과연 쌍용차를 회생시킬 수 있었는지로 해고 노동자들은 신차종이 투입되면 회사 경영이 호전될 수 있으므로 이를 회계에 반영했다면 정리해고 사유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유형자산손상차손을 과다 계상했으며, 유형자산손상차손 규모와 정리해고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유형자산손상차손은 시장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으로 유형자산의 미래 경제적 가치가 장부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재무제표상 손실로 반영하는 것이다.

안진회계법인은 쌍용차의 ‘2008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서 유형자산손상차손을 5176억여원으로 잡았다. 이를 기초로 계산한 2008년 당기순손실은 7110억원. 유형자산손상차손을 반영하기 이전 당기순손실은 1861억원이었다. 딜로이트안진은 “2008년 말 쌍용차는 5개의 신차종 투입계획이 있었다”며 “하지만 경영여건상 신차종 출시 능력이 안 됐으며 따라서 신차종 투입계획을 현금흐름에 반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심 판결에 대해 민주노총은 “늦었지만 당연한 판결”이라며 “해고 노동자들을 즉각 원직복귀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경영자총협회는 “재판부가 쌍용차 정리해고의 정당성 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소모적 갈등이 늘 것”으로 우려했다.

GM의 교훈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겨졌다.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통상임금과 함께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이슈다. ‘고용 안정’이 먼저냐 ‘노동유연성’이 우선이냐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해고는 노동자에겐 일종의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회사가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차가 안 팔려서, 제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아 벼랑끝에 몰린 회사가 회생을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려는 걸 막아서도 곤란하다.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했다가 대주주 자격을 포기하고 철수해버린 건 차 판매가 부진한 데다 강성 노조의 존재 탓이 크다. 이런 측면에서 국회가 경영상 해고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쪽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건 우려를 낳고 있다. 통상임금처럼 강화된 정리해고 요건은 기업 투자를 줄이고 결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판결에선 또 법원(파산법원)이 기업회생을 위한 법정관리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정리해고가 또 다른 법원(서울고법)에서 부인되는 모순이 발견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했던 GM과 크라이슬러가 부활한 건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생산성을 높인 덕분이다.

우리도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flexicurity)을 제고할 시점이 됐다. ‘유연안전성’은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결합한 개념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되 근로자에게 사회적 안전망(social security net)을 제공함으로써 유연화에 따른 근로자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정규직을 해고하기 어렵게 만들수록 기업은 비정규직을 늘리게 된다”며 “정규직은 유연화하고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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