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격차 더 벌어지고 비우량회사채 수요 실종
해운·증권업 신용위험 높아…철강업은 우려 완화될 듯
[ 이태호 / 윤아영 기자 ] “AA급 미만 회사채는 바스켓(투자 가능 종목 리스트)에 넣지 않아요. 비우량 회사채 수요가 실종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A자산운용 투자담당 임원)
올해 업황이 부진한 이른바 ‘취약 업종’에 속해 있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자본시장에서 돈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됐다. 대다수 기관투자가가 웅진·STX·동양그룹 사태를 겪으며 투자 가능 목록에서 취약 업종 기업들을 빼버린 탓이다.
○80%가 “양극화 심해진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외 투자은행(IB) 리더와 전문가 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2.9%가 올해 신용등급과 업종 간 회사채 금리 격차가 커지는 ‘양극화 현상’이 작년보다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양극화 심화’ 응답은 지난해(73.8%)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아진 수치다. 2012년 9월 웅진그룹을 시작으로 지난해 6월 STX, 9월 동양그룹으로 이어진 비우량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 및 워크아웃 신청 사태가 금융회사들의 위험관리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하면서 우량채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형 IB들은 A급 이하 회사채의 경우 충분히 높은 금리를 쳐주더라도 실무 절차상 부담 때문에 투자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 증권사 회사채 발행 담당자는 “기업 분석에 기초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회사채 발행을 주관하려 해도 리스크(위험) 관리 부서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건설·해운·증권업 신용위험 증가
신용위험이 가장 크게 상승할 업종으로는 건설업이 지난해와 똑같이 57%의 응답을 받아 ‘불명예 1위’에 올랐다. 주목할 대목은 해운업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부쩍 높아졌다는 점이다. 1년 전 응답자의 9.6%보다 두 배가 넘는 25.1%가 ‘신용위험 상승’ 업종으로 해운업을 꼽았다.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는 증권업에 대한 우려도 더 커졌다. 응답자 중 세 번째로 많은 8.5%가 올해 증권업 신용위험이 가장 크게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주식시장 침체와 경쟁 심화로 인한 위탁매매 수수료 감소 및 자산관리 영업실적 부진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반면 철강업종에 대한 우려는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 전문가들의 5.8%가 철강업의 신용위험이 가장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한 표도 나오지 않았다. 일부 철강회사의 영업실적 흑자 전환이 업황 개선 기대감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경쟁력 높이려면 자본 확충 서둘러야
올해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칠 핵심 이슈로는 응답자의 58.5%가 ‘법정관리·부도 같은 신용사건의 추가 발생 여부’라고 답했다.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본격화로 인한 국고채 금리 급변’도 28.7%의 답변을 받아 2위를 차지했다.
‘공공·민간기업 구조조정 본격화’(8.5%), ‘CP·신탁 등에 대한 추가 규제’(4.3%) 등도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꼽혔다.
올해 회사채 발행 규모는 전년과 비슷하거나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응답자의 42.5%는 ‘올해 회사채 발행 규모가 작년과 비슷할 것’이라고 봤고 36.2%는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늘어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1.3%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회사채 시장이 다소 위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큰 만큼 DCM(채권발행시장) 분야는 올해 내실을 다지면서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는 ‘자기자본 확충을 통한 인수 여력 확충’(33.9%)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그 다음 방안으로 ‘차별화된 신상품 제안’(29.5%), ‘발행사 투자사 등과 유대감 강화’(18.3%), ‘전문인력 확충’(8.5%) 등을 꼽았다. 전년도에 ‘차별화된 신상품 제안’(37.7%)을 가장 많이 꼽았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이태호/윤아영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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