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원이 법안 냈는데 규제법안 또 내
"기업 손해배상 책임 범위 지나치게 확대"
[ 추가영 / 배석준 기자 ]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환경오염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기금 축적을 골자로 한 ‘환경책임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지난해 7월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환경오염피해 구제에 관한 법안’의 최초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의원이 수개월 동안 산업계 등 의견을 수렴해 법안 내용을 조정한 뒤 국회 공청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 의원이 규제 일변도 법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한 의원의 입법안에 대해 산업계에서는 지난해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처럼 업계 의견 수렴 없이 국회 문턱을 넘는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옥상옥’ 규제법안 잇따라
이같이 환경오염에 이어 오염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환경 관련 규제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환경오염피해구제정책포럼을 구성해 국회, 학계, 법조계, 산업계, 시민단체, 관계 부처로 구성된 이해관계자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 논의 결과를 담아 지난해 7월 피해입증 경감 및 환경오염피해보험 도입을 골자로 하는 화학물질안전관리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이를 토대로 발의된 법안이 이 의원의 ‘환경오염피해 구제에 관한 법안’이다. 하지만 이 법안의 국회 심의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산업계 건의사항을 반영한 조정안을 뒤엎는 ‘환경책임법 제정안’이 뒤늦게 발의된 것이다.
이 법안은 시설 설치로 인해 발생한 대기, 수질, 토양, 해양 오염 등에 대한 피해보상을 위해 별도의 환경피해구제기금을 설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기금 설치를 위해 시설 사업자인 기업은 환경책임부담금을 내야 한다.
또 환경오염피해 보상급여 운영 방법이 규정됐다. 환경오염피해의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환경오염피해조사단을 설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후책임까지 져야 하나”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이미 이 의원이 발의한 환경오염피해 구제에 관한 법안에 이어 중복 규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환경 관련 피해는 인과관계를 규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발생지 인근에 위치한 공장 등 기업시설 탓으로 돌리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환경책임법은 피해배상 범위에 인적·물적 범위뿐 아니라 자연훼손까지 포함시키고 배상책임 방식을 보험 방식이 아닌 부담금에 의한 기금 방식을 택함으로써 기업들의 부담이 증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련의 입법 과정이 화평법 제정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모든 신규 화학물질 정보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화평법은 원래 정부가 2년 동안 업계 의견을 반영해 2012년 발의했으나 국회에 계속 계류돼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터지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부안보다 강화(기존 화학물질 연간 1t→0.5t 또 R&D용 화학물질도 등록하도록 기준 상향)하는 내용의 동일한 법안을 2013년 4월 대표 발의해 통과되면서 논란이 증폭된 바 있다.
작년부터 쏟아진 화평법, 화관법,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탄소배출권거래제와 함께 환구법(환경오염피해구제법), 환통법(환경오염 통합관리법)이 더해져 ‘8대 환경규제’로 분류돼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기업도 건전한 경제활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환경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추가영/배석준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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