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해야하나

입력 2014-02-21 20:43   수정 2014-02-22 05:21

[ 양준영 기자 ]
통신요금 인가제도 폐지 여부가 통신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오는 6월까지 요금 인가제를 포함한 통신요금 제도 개선 로드맵을 마련키로 하면서다.

통신요금 인가제는 유·무선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1991년 도입한 제도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약탈적 요금으로 후발 경쟁업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SK텔레콤과 시내전화 부문의 KT(점유율 81.5%)가 적용 대상이다. 이들 회사는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을 때마다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다른 사업자들은 요금제 신고만 하면 된다.

요금 인가제는 통신시장의 유효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제도인 데다, 후발 사업자들도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어 경쟁환경이 바뀐 만큼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가제가 자유로운 요금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면 이동통신 후발 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는 인가제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LG유플러스는 “현행 요금 인가제에서도 요금 인하는 신고만으로도 가능한데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요금 인하 노력을 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후발 주자인 LG유플러스가 무선인터넷전화(mVoIP) 전면 허용, 망내외 무제한요금제 도입 등 요금 경쟁을 주도해 왔다”고 주장했다. 또 “후발 사업자가 요금 경쟁을 주도해야 시장경쟁이 활성화되고 소비자 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와 관련해 이상규 중앙대 교수와 전응휘 오픈넷 이사장이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펼친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찬성 정부의 가격 규제 되레 毒…이젠 시장 경쟁에 맡겨야

2013년 12월 기준 이동전화 가입자 수 5468만명, 인구 대비 보급률 109%, 스마트폰 가입자 수 3750만명 등의 수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이동전화 서비스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통신 서비스가 됐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국민의 삶을 바꿔 놓았으며, 사회의 특성도 소위 ‘초연결 사회’로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이동전화 시장에서 경쟁을 활성화시키고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정책과제가 됐다. 특히 이동전화 요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대단하다. 해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해외 기관의 이동전화 요금 국제비교 수치가 발표될 때마다 요금 인하에 대한 논란이 어김없이 일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국 이동전화 시장은 1984년 ‘한국이동통신’이라는 국영 독점체제로 시작됐다. 1996년 신세기통신의 진입으로 복점체제가 됐으며, 1997년 PCS 3사가 진입해 5개 사업자가 경쟁하는 체제에서 1999년 SK텔레콤의 신세기 인수, 2001년 KTF의 한솔엠닷컴 인수 이후 3사가 경쟁하는 체제가 됐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독과점 체제하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생겨남에 따라 정부는 지배적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유효경쟁시장의 결과를 모방하기 위한 방안으로 1위 사업자의 이용약관을 인가하는 요금 인가제를 1991년부터 시행해 왔다.

통신료 인가제 시행하는 곳은 OECD 중 우리나라가 유일

요금 인가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지나치게 높거나 차별적인 요금을 책정하는 것을 방지해 이용자 이익을 보호하고, 지나치게 낮은 요금을 책정할 수 없도록 해 경쟁자의 퇴출을 막고 경쟁을 보호하는 친경쟁적 효과가 있다. 반면 사업자의 요금 설정 권한을 제한하기 때문에 사업자 간 요금 경쟁 유인을 감소시키고 신규 서비스 출시를 저해하며, 담합을 조장하는 반경쟁적 효과도 있다. 따라서 인가제의 유지나 폐지 여부는 시장경쟁 상황에 따라 친경쟁적 효과와 반경쟁적 효과를 비교해 결정해야 한다. 또한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사업자의 주요 경쟁 수단인 요금설정권을 제한하는 인가제는 매우 강한 규제이므로 인가제 이외의 보다 완화된 규제로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이동전화 시장의 경쟁상황은 어떠한가? 독점적 요금, 약탈적 요금, 차별적 요금을 설정해 시장경쟁과 이용자 이익을 저해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가제만이 유일하고 효과적인 규제 수단일까? 그렇지 않다.

현재 이동전화 시장에는 3개의 네트워크 사업자와 28개의 알뜰폰 사업자가 있고, ‘보조금 대란’이라고 불릴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으로 특정 사업자가 절대적인 경쟁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3G와 LTE 도입 이후 주파수 차이에 따른 서비스 품질 차이가 없어지고 가입비 인하 등으로 사업자 전환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특정 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한다면 가입자들은 다른 사업자로 전환할 것이다. 또한 전체 가입자의 30%, 20%를 보유하고 있는 2개의 네트워크 사업자가 존재하고, 이미 알뜰폰 사업자가 네트워크 사업자 대비 30% 정도 저렴한 요금제를 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탈적 요금을 통해 경쟁자를 배제할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뿐만 아니라 독점 가격, 약탈 가격, 차별적 가격은 공정거래법에서도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따라서 인가제를 폐지하더라도 우려하는 것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반면, 요금 인가제는 인가대상 사업자가 가격을 선도하고 경쟁자가 유사한 수준으로 가격을 설정해 가격 경쟁을 회피하고 초과이윤을 향유하는 ‘가격우산(umbrella pricing)’이나 가격담합의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요금 인가제가 가격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시민단체나 국회 국정감사의 지적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모적 마케팅 중단하고 요금 중심 서비스로 승부를

한편 요금 인가제는 시장기능이 아닌 정치적, 행정적 판단에 따라 요금을 인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정부의 이런 시장개입은 시장기능을 왜곡해 효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 제공사업자에 안정적이고 적정한 수준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네트워크의 고도화, 품질향상, 신규 서비스 도입 등과 같은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OECD 국가 중에서 현재 이동전화 요금 인가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들 국가에서 인가제를 운영하지 않아 이동전화 시장에 독점·약탈·차별적 요금이 발생하고 경쟁이 심각하게 저해된 사례는 없다.

인가제는 더 이상 시장경쟁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시장의 역동성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제도다. 따라서 인가제를 유지하기보다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통해 소모적인 마케팅 경쟁을 요금 중심의 서비스 경쟁으로 전환하고, 심(SIM)카드 이동성을 보장해 사업자 간 전환장벽을 낮추며, 서비스 기반 경쟁을 강화해 알뜰폰 사업자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효과적 정책이라 판단된다. 시장 경쟁을 보다 활성화하고, 시장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상규 < 중앙대 교수 >

반대 요금 인상 막는 유일한 장치…독과점 가격땐 소비자 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격년으로 발표하는 세계통신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19개 국가 중 한국은 매달 가계에서 가장 많은 이동통신비를 지출했다. 2위를 차지한 일본과는 무려 15.4달러나 차이가 났다(국가별로 구매력을 평준화한 달러 가치 기준 한국 115.5, 일본 100.1). 3위를 차지한 멕시코의 경우에도 우리보다 월평균 3분의 1 정도 이동통신비를 덜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보다 한국 사람들이 이동통신서비스를 유독 더 많이 써서 이처럼 많은 비용을 내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한국 못지않게 이동통신을 많이 쓰는 나라들의 통신사업자들이 매달 한 명의 가입자로부터 거둬들이는 매출만 비교해 봐도 한국 업체의 매출이 세계 최고인 것을 보면 요금 수준 또한 만만치 않게 높음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경쟁이 있는 시장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요금이 적정 수준에서 형성되리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한국 이동통신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시장 집중도가 높은 시장군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여년간 마케팅경쟁은 이뤄져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가격인하 경쟁은 이뤄지지 않은 시장이다. 국책연구기관도 한국 이동통신시장은 “경쟁이 없는 시장”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독과점 시장이라는 뜻이다. 독과점 시장이라면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국가가 규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아니 이미 지난 십여년간 그렇게 해 왔다. 그것이 바로 시장지배사업자에 대한 요금 인가제다.

소비자가 납득할수있게 투명한 인가제 운영해야

이처럼 가격 규제 여부는 시장의 경쟁상황에 대한 평가에 따라 결정된다. 가격 규제는 자의적 선택이나 맞짱토론을 통해서, 혹은 정책 당국자가 로드맵을 작성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유일한 피규제자인 SK텔레콤의 의견이나 의향을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른 나라 이동통신 시장에 가격 규제가 없는 이유는 시장 형성 초기부터 경쟁 환경이 제대로 조성돼 가격에 대한 경쟁 압력이 시장에 확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유선 초고속인터넷은 이미 2010년부터 요금 인가제를 없앴다. 시장에서 사업자 간 경쟁 수준이나 가격 경쟁이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동통신 시장은 정반대다.

그런데 통신비가 영업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독과점 가격에 대해 국가가 제대로 된 규제를 해 왔다면, 어떻게 지금처럼 시장지배사업자들이 지난 5년간 연평균 14.3% 수준의 환상적인 영업이익률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일까? 국내 대기업들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6%가 채 못되며 최근에는 더 떨어졌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내수경기가 부진했던 작년에도 SK텔레콤의 영업이익률 추정치는 12%를 넘어섰다. 바로 이 점이 요금 인가제의 수수께끼다.

이런 현실을 놓고 소위 요금 인가제 폐지론자들은 요금 인가제 때문에 요금을 인하할 길이 막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의 요금 인가제는 요금 인상 인가제이지 요금 인하를 위해서는 인가받을 필요가 없고 신고만 하면 된다. 즉, 요금 인가제 때문에 요금이 인하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요금 인가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금을 사실상 독과점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이 없는 이동통신시장…가격 왜곡만 부채질할 것

그런가 하면 이동통신 요금은 3세대(3G)와 4세대 LTE 서비스로 이어지면서 2세대(2G) 기준으로 거의 100% 가깝게 인상됐다. 사실 이들 신규 서비스의 데이터 원가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아졌는데도 말이다.

참여연대가 통신규제 당국을 상대로 한 이동통신 원가 관련 자료 공개 청구소송에서 요구한 것은 당국이 요금을 인가할 때 요금 수준을 평가한 평가자료를 공개해달라는 것이었다. “가격 규제하에서 독과점 수준의 요금”이 유지되는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규제 당국 관계자는 법정 증언에서 “그런 자료는 없다”고 답변했다. 다른 관계자는 “요금 인가는 사업자가 가져오는 서류에 그냥 도장을 찍어주는 일일 뿐”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법원은 요금을 인가할 때 사업자가 규제 당국에 제출하는 인가·신고 신청서류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시민사회가 납득할 수 있도록 “인가제를 투명하게” 운영하라는 결정이다. 그로부터 1주일 후 미래창조과학부는 ‘요금 인가제 폐지’ 등을 검토하는 요금제 제도개선 로드맵을 6월까지 내겠다고 밝혔다. 투명한 인가제로 적정 요금을 조성하느니 차라리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독과점 가격 방치를 택하겠다는 것인가?

제도적으로 요금 인하를 허용하고 있는 현행 인가제하에서는 어떤 이동통신사도 먼저 나서서 요금 인하 경쟁을 하지 않는다. 인가 요금이 사실상 충분히 독과점 수준의 초과이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데 구태여 출혈경쟁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가 당국이 이미 독과점 수준의 요금을 용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과점 규제까지 폐지한다면 사업자들은 현재의 가격 수준을 유지만 해도 담합을 통해서나 얻을 수 있는 독과점 초과이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제도 개선의 방향이 독과점 수준의 요금이 어떻게 용인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현행의 미스터리 인가제를 유지하는 것도, 독과점 규제를 포기하는 것도 아닌 ‘투명한 인가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전응휘 < 오픈넷 이사장 >

■ 읽을 만한 자료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12)
△OECD Communications Outlook 2013
△Merrill Lynch Global Wireless Matrix 3Q13
△KT, 2G Paradox, 비워야 채운다(대신증권 기업분석, 2013.5)
△정보통신법 연구 3: 통신법상 이용자보호 및 공정경쟁을 위한 규제제도의 주요 쟁점과 개선방향(이원우, 2008)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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