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손톱 밑 가시부터 뽑자
정부의 제도 정책이 IoT 기술 혁신 못따라가
ITS 주파수 확보 못해…스마트 자동차도 '브레이크'
[ 심성미 기자 ]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 열풍’이 불어닥쳤다. 정보기술(IT)업계는 물론 의료, 자동차, 물류업계까지 IoT 기술과 융합한 제품 및 서비스 연구개발에 여념이 없다. 전 세계가 “스마트폰을 이을 제2의 블루오션은 IoT”라며 흥분하고 있지만 정작 ‘IT 강국’ 한국에선 제대로 된 IoT 서비스를 구경하기 어렵다. 각 분야에 제대로 된 IoT 환경을 구축하기엔 산적한 법적·제도적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의 제도나 정책이 기술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익집단 반발에 요원한 원격진료
IoT 시장에서 정부의 규제나 이익집단의 반대로 진전이 더딘 대표적 사례는 원격진료 분야다. 원격진료란 직접 의사를 만나지 않고도 사물 간 통신을 이용해 건강 예방, 진단, 치료, 사후관리 등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말한다.
원격진료는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헬스케어 모델로 평가받는다. 예컨대 고혈압 환자는 매일 혈압을 측정해 그 결과를 주기적으로 의사에게 전달하면 원격처방을 통해 필요한 약을 사서 복용할 수 있다.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한결 쉬워지는 것이다. 섬이나 산간 지방에 살고 있어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주민에게도 유용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원격진료가 현재 불가능하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를 인터넷이나 화상통신 등을 통해 원격으로 진료·진단하는 것을 막고 있다. 정부는 이런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관련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의사협회의 반대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야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여섯 차례 ‘마라톤 협의’를 거쳐 의료법 개정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법이 통과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의협의 내분이다. 노환규 의협 회장을 비롯해 적지 않은 의사가 의협 측 협상단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21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총파업 실행 여부에 대한 투표도 하기로 했다.
한국이 의협 등 이익집단에 발목 잡힌 동안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오래전에 원격 진료 서비스를 도입해 시장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1997년부터 노인 대상의 원격진료인 ‘메디케어’, 저소득층 대상의 ‘메디케이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서비스에는 보험까지 적용된다. 일본 역시 1997년 만성질환 재진과 재택상담 등에 원격의료를 도입했다. 원격진료를 포함한 U-헬스케어(Ubiquitous Health care) 산업은 대표적인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꼽힌다. 영국의 BBC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U-헬스케어 산업은 2009년 1431억달러(약 154조원)에서 2018년 4987억달러(약 527조원) 규모로 팽창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중소업체는 이미 원격진료 시장 진출 채비를 마친 상태다. 인포피아는 만성질환을 자가 측정한 뒤 데이터를 병원으로 보내주는 장비를 제조하고 있다. 비트컴퓨터는 원격진료 및 헬스케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놨다. 그러나 이들은 해외 시장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인포피아 관계자는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는 10여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해관계가 충돌돼 번번이 무산됐다”며 “인포피아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파수 없어 스마트카 시장 제동
‘IoT 시대 손톱 밑 가시’는 또 있다. 구글, 삼성, 애플 등 IT 업체들이 차세대 먹거리 중 하나로 ‘스마트 자동차’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마트카 상용화는 아직 ‘판타지’일 뿐이다. 인프라 구축과 제도 정비가 전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해결해야 될 문제는 지능형 교통시스템(ITS)의 주파수 할당 문제다. ITS란 전국의 교통정보, 도로상황 등을 효율적으로 알려주는 종합교통정보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교통 혼잡을 완화하고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 예컨대 앞에 가는 차량이 급정거하면 내가 운전하는 차에 신호를 보내 알려주는 식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 모든 도로에 ITS를 구축하기로 하고 2016년까지 900억원을 투입해 차량 간 통신기술을 상용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차량용 통신에 쓰이는 주파수를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했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진작 주파수 할당을 요청했다. 하지만 해당 주파수 대역은 방송국의 이동중계 방송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급하게 주파수를 할당하다 생긴 문제다. 주파수 배분이 안될 경우 장비 개발과 상용화에서 다른 나라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파수를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박성룡 국토교통부 첨단도로환경과 사무관은 “주파수를 공유하면 방송 중계 때 잡음이 생기는 문제가 발견됐다”며 “많은 국가가 ITS용으로 이 주파수 대역을 쓰고 있어 방송국에 다른 주파수를 할당하는 방안을 미래창조과학부와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차량 위치정보 등 교통정보 수집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근거도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강연수 한국교통연구원 창조경제융합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IT와 자동차가 결합된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주파수 할당 문제와 사생활 정보 문제를 정부가 하루빨리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원격의료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먼 거리에 의료정보와 의료서비스를 전달하는 모든 활동. 멀리 떨어져 있는 의사 간 원격자문, 원격검진에 의한 진료 및 처방 등이 포함된다. 이 중 의사가 정보통신망을 통해 환자에게 상담이나 처방해주는 것을 원격진료라고 부른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정부의 제도 정책이 IoT 기술 혁신 못따라가
ITS 주파수 확보 못해…스마트 자동차도 '브레이크'
[ 심성미 기자 ]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 열풍’이 불어닥쳤다. 정보기술(IT)업계는 물론 의료, 자동차, 물류업계까지 IoT 기술과 융합한 제품 및 서비스 연구개발에 여념이 없다. 전 세계가 “스마트폰을 이을 제2의 블루오션은 IoT”라며 흥분하고 있지만 정작 ‘IT 강국’ 한국에선 제대로 된 IoT 서비스를 구경하기 어렵다. 각 분야에 제대로 된 IoT 환경을 구축하기엔 산적한 법적·제도적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의 제도나 정책이 기술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익집단 반발에 요원한 원격진료
IoT 시장에서 정부의 규제나 이익집단의 반대로 진전이 더딘 대표적 사례는 원격진료 분야다. 원격진료란 직접 의사를 만나지 않고도 사물 간 통신을 이용해 건강 예방, 진단, 치료, 사후관리 등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말한다.
원격진료는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헬스케어 모델로 평가받는다. 예컨대 고혈압 환자는 매일 혈압을 측정해 그 결과를 주기적으로 의사에게 전달하면 원격처방을 통해 필요한 약을 사서 복용할 수 있다.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한결 쉬워지는 것이다. 섬이나 산간 지방에 살고 있어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주민에게도 유용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원격진료가 현재 불가능하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를 인터넷이나 화상통신 등을 통해 원격으로 진료·진단하는 것을 막고 있다. 정부는 이런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관련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의사협회의 반대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야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여섯 차례 ‘마라톤 협의’를 거쳐 의료법 개정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법이 통과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의협의 내분이다. 노환규 의협 회장을 비롯해 적지 않은 의사가 의협 측 협상단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21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총파업 실행 여부에 대한 투표도 하기로 했다.
한국이 의협 등 이익집단에 발목 잡힌 동안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오래전에 원격 진료 서비스를 도입해 시장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1997년부터 노인 대상의 원격진료인 ‘메디케어’, 저소득층 대상의 ‘메디케이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서비스에는 보험까지 적용된다. 일본 역시 1997년 만성질환 재진과 재택상담 등에 원격의료를 도입했다. 원격진료를 포함한 U-헬스케어(Ubiquitous Health care) 산업은 대표적인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꼽힌다. 영국의 BBC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U-헬스케어 산업은 2009년 1431억달러(약 154조원)에서 2018년 4987억달러(약 527조원) 규모로 팽창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중소업체는 이미 원격진료 시장 진출 채비를 마친 상태다. 인포피아는 만성질환을 자가 측정한 뒤 데이터를 병원으로 보내주는 장비를 제조하고 있다. 비트컴퓨터는 원격진료 및 헬스케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놨다. 그러나 이들은 해외 시장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인포피아 관계자는 “원격진료에 대한 논의는 10여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해관계가 충돌돼 번번이 무산됐다”며 “인포피아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파수 없어 스마트카 시장 제동
‘IoT 시대 손톱 밑 가시’는 또 있다. 구글, 삼성, 애플 등 IT 업체들이 차세대 먹거리 중 하나로 ‘스마트 자동차’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마트카 상용화는 아직 ‘판타지’일 뿐이다. 인프라 구축과 제도 정비가 전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해결해야 될 문제는 지능형 교통시스템(ITS)의 주파수 할당 문제다. ITS란 전국의 교통정보, 도로상황 등을 효율적으로 알려주는 종합교통정보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교통 혼잡을 완화하고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 예컨대 앞에 가는 차량이 급정거하면 내가 운전하는 차에 신호를 보내 알려주는 식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 모든 도로에 ITS를 구축하기로 하고 2016년까지 900억원을 투입해 차량 간 통신기술을 상용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차량용 통신에 쓰이는 주파수를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했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진작 주파수 할당을 요청했다. 하지만 해당 주파수 대역은 방송국의 이동중계 방송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급하게 주파수를 할당하다 생긴 문제다. 주파수 배분이 안될 경우 장비 개발과 상용화에서 다른 나라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파수를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박성룡 국토교통부 첨단도로환경과 사무관은 “주파수를 공유하면 방송 중계 때 잡음이 생기는 문제가 발견됐다”며 “많은 국가가 ITS용으로 이 주파수 대역을 쓰고 있어 방송국에 다른 주파수를 할당하는 방안을 미래창조과학부와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차량 위치정보 등 교통정보 수집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근거도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강연수 한국교통연구원 창조경제융합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IT와 자동차가 결합된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주파수 할당 문제와 사생활 정보 문제를 정부가 하루빨리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원격의료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먼 거리에 의료정보와 의료서비스를 전달하는 모든 활동. 멀리 떨어져 있는 의사 간 원격자문, 원격검진에 의한 진료 및 처방 등이 포함된다. 이 중 의사가 정보통신망을 통해 환자에게 상담이나 처방해주는 것을 원격진료라고 부른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