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기부정하는 법원의 쌍용차 판결

입력 2014-02-25 20:35   수정 2014-02-26 05:54

"법원이 승인한 쌍용차 정리해고
이제와 인정 못한다고 뒤집는 건
회생 추진 기업들에 돌 던지는 격"

김영배 <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파산 또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기업회생절차 신청건수는 2007년 116개에서 2008년 366개, 2009년 669개로 2년 새 5.8배 증가했다. 쌍용자동차도 그때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쌍용차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13년간 흑자를 기록한 해가 단 5회에 불과하며, 기간 중 흑자규모가 9400억원인 데 비해 적자는 4조2000억원에 달해 정상적인 경영이 힘든 상황이었다. 2009년에는 1월 말 가용현금이 74억원에 불과해 만기도래한 920억원의 약속어음을 결제하지 못하는 유동성 위기가 있었고, 4월 만기예정인 1500억원의 부채가 또다시 기다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최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까지 철수를 결정하며 창업 이래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고 파산과 회생의 기로에서 결국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 당시 법원은 쌍용차의 위기상황을 검토한 끝에 회생절차를 진행키로 결정하고, 이에 따른 구조조정안을 승인했다. 이후 77일간의 옥쇄파업, 8·6노사대타협, 해고취소소송 등이 이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은 당시의 쌍용차 해고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에서 1심의 근로자 패소판결을 뒤집는 정리해고 무효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논거는 첫째, 회사가 경영상 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 필요성을 내세우기 위해 신차출시계획을 고려하지 않아 손실을 부풀렸다는 것이고 둘째, 일부 유동성 위기는 인정되지만 구조적이고 계속적인 재무건전성의 위기가 있었는지는 증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법원은 그 당시 현대·기아차 생산량의 3% 미만으로 추락했던 기업, 3000억~5000억원의 신차개발비는커녕 가용현금 74억원만 가진 기업, 13년간 흑자규모보다 적자규모가 4.5배 큰 기업을 구조적이고 계속적인 경영상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시적 구조조정 가능성에 노출돼 있는 국내 기업 전체의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한국을 주시하고 있는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의 투자환경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생사의 기로에 선 기업이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진행했던 구조조정 노력조차 불법으로 판결날 수 있다면, 한국에서의 모든 기업활동은 엄청난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리스크가 상존한다면 어느 누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며 위기의 기업을 회생시킬 노력을 할지 의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 문제였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로 대기업의 고용경직성이 심화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고용창출 능력이 크게 저하됐다. 더욱이 입법부와 행정부에서는 노동시장 경직성을 높이려는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반면에 세계 각국은 저성장 기조의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용규제 완화를 핵심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독일 미국 등은 물론 우리와 가까운 일본까지도 적극적으로 고용규제 완화 정책에 나서며 고용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쌍용차는 각고의 노력으로 경영을 정상화하며 무급휴직자 복귀 등 2009년 노사대타협 약속을 이행하려 애쓰고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으로 폐업이라는 지옥의 문턱을 빠져나온 쌍용차 노사에게 이번 판결은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쌍용차는 물론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이 땅의 노사 모두에게 법원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 다시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김영배 <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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