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전문가 모두가 대리권을 갖는다면…
위철환 < 대한변호사협회장 welawyer@hanmail.net >
얼마 전 사법연수원 수료식에 축사를 하러 갔다. 사법 연수생 786명이 수료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취업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곧 로스쿨 졸업생 중 1500명 이상이 변호사 시험 합격자로 배출될 예정이어서 올봄에는 미취업 변호사가 약 2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새내기 변호사들이 법률시장에 대량 배출되고 법률시장 개방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더 이상 넓힐 수 있는 취업의 문이 없는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유사직역자들이 소송대리권을 달라며 군침을 흘리고 있다. 지식재산권에 관한 침해 소송은 변리사가 전문이고, 세무 관련 소송은 세무사가 전문이라는 것이다. 소액사건 전문가를 자처하는 법무사들이 소송대리권을 달라고 주장한 것은 이미 오래전인데, 이제는 부동산 공인중개사와 노무사 단체마저 자신들이 부동산과 노무 관련 전문가라며 소송대리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에는 변호사가 필요없다. 모든 국민이 각각 자기 영역에서 전문가들인데 소송 전문가인 변호사가 굳이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유사직역자들 주장의 문제점은 해당 업종의 전문가와 소송 전문가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각각의 고유 영역에서 전문가라고 자처하고, 그렇기 때문에 ‘소송대리권’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영역을 아는 것과 ‘소송’을 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봐야 한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들의 다양한 전공을 살려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한 로스쿨 제도가 왜 생겼겠는가.
소송대리권을 가질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을 마다하고 국회에 소송대리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입법에도 본질적인 한계가 있는 법이다. 국회에 요구해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기만 하면 없었던 소송대리권이 생겨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그러한 편법 입법의 결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법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위철환 < 대한변호사협회장 welawyer@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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