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현우 기자 ] 첫인상은 단순하고 투박해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묘하게 중독되고 마는 ‘나쁜 남자’ 같은 시계가 있다. 오랜 세월 심해 탐험용 시계를 제작하며 바다와 인연을 맺어 온 파네라이 얘기다. 파네라이가 최근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공개한 올 신상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시간을 기록하는 크로노그래프
우선 눈에 띄는 신상품은 ‘라디오미르 1940 크로노그래프’다.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란 시간의 간격을 측정하는 기능으로, 쉽게 말하면 일종의 스톱워치다. 그리스어로 ‘시간’(chronos)과 ‘쓰다’(grophein)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 시계는 숫자 그대로 1940년에 나왔던 모델을 재현한 것이다. 이탈리아 해군을 위해 만든 1930년대 라디오미르 케이스에서 1950년대 루미노르 케이스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단순하면서 우아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지름 45㎜의 큼지막한 시계로, 소재에 따라 세 종류로 출시됐다. 플래티늄을 사용한 ‘라디오미르 1940 크로노그래프 플라티노’는 인덱스(시간 표시)를 선과 점으로 깔끔하게 처리한 아이보리색 다이얼(시계판)을 썼다. 레드 골드를 사용한 ‘라디오미르 1940 크로노그래프 오로 로소’는 로마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조합한 갈색 다이얼을 내세웠다. 화이트 골드를 쓴 ‘라디오미르 1940 크로노그래프 오로 비안코’는 내부에 삽입된 야광물질이 빛을 발한다.
회중시계 매력에 빠져볼까
요즘 회중시계는 수집가들이 찾는 희귀품 대접을 받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신사들의 대표적인 액세서리였다. 남자가 손목에 시계를 차는 건 곤란하다는 선입견이 사라지고 남성들이 손목시계를 널리 차게 된 건 1차 세계대전 때에 이르러서다. 파네라이는 1900년대 초반 매장에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의 포켓 워치’라는 문구를 새겼을 만큼 회중시계를 찾는 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올해도 자사의 전형적인 디자인을 회중시계에 옮긴 신상품을 내놨다.
레드 골드로 만든 ‘포켓 워치 3 데이즈 오로 로소’와 화이트 골드로 만든 ‘포켓 워치 3 데이즈 오로 비안코’가 주인공이다. 케이스 지름은 50㎜로, 50개씩 한정 생산했다. 파네라이가 항해용 체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길이 40㎝짜리 체인이 매력적이다. 12시 방향에 크라운(용두)을 감싸는 체인고리에 연결하면 된다. 시계 뒷면을 통해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자세히 감상할 수 있다.
오른손에 차는 시계도 눈길
파네라이에선 ‘오른손에 차는 시계’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왼손잡이를 유독 배려해서일까. 그보다는 이탈리아 해군과의 오랜 인연이 배경이다. 해군 특공대원들은 작전을 벌일 때 손목에 시계뿐 아니라 나침반, 측심기 등 여러 기구를 동시에 착용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일부 대원은 시계를 오른손에 착용하길 원했고, 파네라이는 크라운을 왼쪽에 붙인 시계를 제작했다. 지금도 이런 특징을 계승한 레프트핸즈 모델이 일부 존재한다.
올해 공개된 ‘루미노르 1950 크로노 모노펄산테 레프트 핸디드 8 데이즈 티타니오’는 한 개의 푸시 버튼으로 시간 측정을 시작하고 또 중지할 수 있으며, 다시 원위치로 되돌릴 수도 있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특징이다. 함께 선보인 ‘루미노르 1950 레프트핸즈 3 데이즈’는 러그의 끝을 뾰족하게 만드는 등 디자인에 디테일한 변화를 줘 마니아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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