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주볼펜' 이야기가 주는 교훈

입력 2014-03-05 20:36   수정 2014-03-06 04:49

"반도체 이후 내놓을 산업 없는 한국
사회 각 부문간 소통·협업 꾀하고
한 발 앞선 미래 투자 더 과감해야"

민경찬 < 연세대 교수·수학·국가중점과학기술전략로드맵추진단장 kcmin@yonsei.ac.kr >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말이 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알고 보면 해답이 간단하다는 말이다. ‘경제성의 원리’, ‘사고절약의 원리’라고도 불린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잉크가 흘러나오지 않아 볼펜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에 미국은 당시 120만달러의 연구비를 들여 우주볼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미국의 우주선이 소련의 우주정거장에 도킹했을 때 미국 측이 이 펜을 자랑하자 소련의 우주비행사들은 “우리는 연필을 쓴다”고 답했다.

잘못된 판단과 전략방향, 과잉투자의 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이 이야기에는 극적인 반전이 있다. 사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연필을 사용하면 안 된다. 흑연가루가 날려 기계의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고, 화재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주경쟁이 끝난 이후에도 소련 측은 미국에서 이 우주볼펜을 수입해 사용했다. 미국은 당시 개발한 기술로 심해, 오지 등 극한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필기구들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 과감한 투자의 성공 사례가 됐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구글의 시가총액이 400조원대를 넘어 글로벌 석유 메이저 회사인 엑슨모빌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라, 1위인 애플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검색광고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구글 글라스를 비롯 무인자동차, 인공지능, 로봇 분야 등 미래 산업 관련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개별 기업이 몇십 년 앞을 내다보고 첨단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정부의 지원과 연구 성과의 산물로 반도체 강국이 됐지만 2000년대 이후 세계에 내놓을 만한 또 다른 과학기술 관련 산업 분야가 딱히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해 발표한 ‘2012년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전략기술 수준은 미국의 77.8%에 불과하며, 2.5년 앞섰던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1.9년으로 단축됐다. 2031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연간 1%로 급락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는 우리를 더욱 긴장하게 한다.

정부가 다음달 발표할 예정으로, 국가중점과학기술 전략로드맵 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절박함과 맥이 닿아 있다. 이 전략로드맵은 향후 10년을 바라보며 범부처적으로 중점을 둘 30개 기술에 대한 비전과 목표,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기술과 요소기술들의 단계별 확보 방안을 담게 된다. 기술 분야별 특성에 따라 기초·원천연구에서 사업화, 법·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기술성장 전 주기에 걸친 ‘토털 솔루션’이라는 체계적 대응전략이 포함된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논문위주의 성과를 넘어 실제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신산업 창출, 미래신산업 기반 확충,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 조성, 건강 장수시대 구현, 걱정 없는 안전사회 구축’이라는 5대 분야에 걸친 국가 차원의 통합적 그림을 그리게 된다.

정확한 해도(海圖)는 목적지까지 성공적인 항해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선장을 비롯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역할을 분담하며 협업할 때 가능하다. 국가의 과학기술전략도 마찬가지다. 정부 부처 간은 물론, 민간과 더불어 협업과 소통이 원활해야만 ‘오컴의 면도날’처럼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시키며 투자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내달 나올 국가중점과학기술의 전략로드맵에 따른 과학기술 선진국을 향한 힘찬 항해를 빨리 지켜보고 싶다.

민경찬 < 연세대 교수·수학·국가중점과학기술전략로드맵추진단장 kcmin@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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