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바뀌는 감사
'경영진의 들러리' 역할서 투자결정 등에 제목소리
권한 어디까지
"총대 메고 CEO 견제 당연"…"결재대상 확대 신중해야"
[ 박신영 기자 ]
금융권에서 감사위원회 및 상임감사위원의 권한 범위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됐다. 국민은행 감사위원회가 지난 2월 말 이건호 행장에게 올라가는 모든 결재 서류를 정병기 감사가 사전감사하도록 한 것이 계기였다. 이를 두고 ‘과도한 경영간섭’이라는 의견과 ‘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본지 3월5일자 A1, 10면 참조
◆달라진 감사의 위상
국민은행의 사전감사 확대 사건 전에도 금융권에선 감사의 목소리가 커진 경우가 많다. 자산관리공사(캠코)의 경우 송기국 전 감사가 장영철 전 사장을 용역 입찰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며 권익위원회에 신고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송 전 감사는 지난해 10월 임기를 열흘 앞두고 사표를 제출했다.
지난해 말 취임한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KIC 감사 시절 홍석주 전 KIC 사장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에 대해 투자 결정을 한 것을 두고 홍 전 사장과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금융회사 감사는 ‘경영진의 들러리’ 정도로 여겨졌다. 경영진을 견제하기는커녕 경영진에 동조하면서 임기를 연장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2010년 이른바 ‘신한금융 사태’ 때 원우종 당시 신한은행 감사가 일본 나고야까지 가서 주주들 앞에서 신상훈 당시 사장 해임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오히려 경영권 간섭 논란까지 나올 만큼 감사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감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 탓이라고 분석한다. 국민은행의 경우 국민주택채권 위조,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건 등으로 박동순 전 감사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조직 내 자리보전용에 불과했던 감사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감사 권한 어디까지
일부에서는 감사의 독립성 확보에 열중한 나머지 감사 권한의 적정선을 넘어서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민은행의 정병기 감사가 사전감사 범위를 ‘은행장의 모든 결재대상’으로 확대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시중은행 감사는 “감사가 은행장의 결재사항을 사전에 모두 들여다보면 추후에 관련 사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를 감사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또한 감사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커지면 중요한 전략을 결정할 때 추진력을 잃고, 업무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특히 시한을 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은행장의 결재문서를 사전감사하겠다는 것은 감사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전감사의 범위는 해외 지점에 대한 점검 주기, 개인정보의 관리체계 등 전반적인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데 국한해야 한다”며 “행장의 결정에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좀 더 큰 그림에서 사전감사 대상을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대우 전 SK에너지 사외이사는 감사가 내부 소통을 활발히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그는 “감사가 총대를 메고 최고경영자(CEO)에게 쓴소리를 해야 다른 임직원도 그를 방패막이 삼아 의견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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