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소비자 입장에서
긴급출동 서비스 첫 도입 등 고객중심 경영철학 실천
위기 때 더 빛나는 내실경영
최근 5년간 16%씩 성장…규제 강화에도 지급여력 선방
식지 않는 성장동력 찾기
현장 경영·사회 공헌 강화…보험가입자와 접점 넓혀가
[ 김은정 기자 ]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돼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타이어가 펑크날 때, 혹은 문이 잠겨 열리지 않으면 자동차 운전자들은 크게 당황한다. 초보나 여성 운전자들을 특히 괴롭히는 이런 일은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큰 걱정거리에서 탈락했다. 보험사에 연락하면 현장으로 바로 달려와 무료로 조치해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친숙해진 이 ‘긴급 출동 서비스’를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보험회사가 LIG손해보험이다. LIG손보는 1996년 ‘매직카 서비스’를 시작해 작년까지 총 2000만번이나 현장에 출동했다. 지금은 국내 모든 자동차보험사가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보험사들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니 잇단 ‘업계 최초’
LIG손해보험은 현대해상화재, 동부화재와 함께 업계 선두인 삼성화재를 뒤쫓고 있는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많은 ‘업계 최초’ 타이틀을 보유 중이며, 건전성 수익성 등 질적인 측면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보험사로 평가받는다.
이 회사는 지난 1월27일 창립 55주년을 맞았다. 1959년 서울 태평로의 작은 사무실에서 범한해상화재라는 이름의 해상보험 전업사로 출발했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역대급’ 태풍인 사라호가 몰아쳤을 때였다. 사망·실종 등 1000여명의 인명 피해와 16만채의 가옥이 부서지는 전무후무한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소규모 신생 보험사에 불과했던 LIG손보는 신속하고 정확한 사고 뒤처리를 선보이며 인지도와 신뢰도를 급상승시켰다. 위기 때에 ‘무엇이든 소비자 입장에서 고민하고 움직이자’는 남다른 고객 중심의 경영철학이 빛을 발한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긴급 출동 서비스도 고객을 중심에 두는 자세에서 탄생했다.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기름이 떨어져 낭패를 겪었다’는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경험을 듣고 곧바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부서 간 업무 공조 끝에 서비스를 만들었다.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소비자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삼성화재 등 업계 선두권 회사가 바로 유사한 서비스로 뒤따랐고, 호주 최대 자동차보험회사인 NRMA는 임직원 10여명을 LIG손보로 파견해 벤치마킹해 갔다.
이 같은 고객 중심 경영을 실천한 덕분에 LIG손보는 많은 ‘업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다. 1988년 소비자에게 음료 등을 제공하며 보험계약과 관리가 가능한 상담창구인 ‘고객 프라자’를 업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항공기가 이륙해서 착륙할 때까지 비행 중에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을 보장하는 항공보험도 최초로 개발했다. 이름을 듣고 쉽게 회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회사명에 ‘손해보험’을 넣은 곳도 LIG손보다. 또 사회적 책임(CSR) 이행을 강화하기 위해 작년 4월 CSR 담당을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신설, 업계 내 사회공헌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위기에서 돋보이는 ‘내실 경영’의 선두주자
기업보험에서 출발해 일반 소비자 대상의 가계보험으로 빠르게 파고들던 범한해상은 이후 LG그룹의 전신인 럭키그룹에 편입됐다. 모그룹을 따라서 럭키화재, LG화재로 불리다 지금의 LIG손보로 이름이 바뀐 것은 2006년 4월이다.
이처럼 지배구조가 변하는 격동기에서도 꾸준한 실적을 거두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손해보험 시장이 최근 5년간 연평균 14.7% 커진 상황에서 LIG손보는 성장세가 둔화하게 마련인 중대형사임에도 16.2%씩 외형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8조8973억원, 자산 20조1571억원을 올렸다. 손해보험 시장에서 14%의 점유율(매출 기준)을 차지하며 4위를 달리고 있다. 임직원 수는 3200여명, 설계사는 1만6000명에 이른다.
판매한 보험의 포트폴리오가 수익성이 좋은 장기보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60% 선에 머물던 장기보험 비중이 작년에는 70%대로 높아졌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인해 손보사들의 보험금 지급여력(RBC) 비율이 크게 떨어지는 와중에 LIG손보의 내림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도 그 덕분이다. 작년 4분기의 경우 손보사들의 RBC 하락폭은 평균 10.1%포인트에 달했지만 이 회사는 3.9%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다.
LIG손보는 지금 새 주인을 찾고 있다. 기존 대주주인 LIG그룹이 전략적으로 전격 매각을 결정한 뒤 나타난 반응은 이 회사에 대한 시장의 높은 평가를 잘 보여준다. 보험회사뿐만 아니라 굴지의 금융지주회사, 대형 사모펀드(PEF) 등이 인수 의사를 내비치며 경쟁적으로 입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매각은 LIG손보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주주 리스크 등을 털고 체력을 보강해 한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장 경영과 사회공헌으로 지속 성장”
경기 침체와 저성장을 감안할 때 보험산업은 과거처럼 큰 성장동력을 창출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LIG손보가 현장 경영과 사회 기여를 중시하는 것도 이런 환경 변화에 적응해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결국 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더 긍정적으로 바꾸고 자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게 관건이라는 판단이다.
LIG손보는 소비자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사회 공헌도를 높여가고 있다. 김병헌 LIG손보 사장은 “소비자 보호와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고객과의 신뢰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장기적인 성장 지속의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경영 철학이 뚜렷한 기업은 지배구조의 변화와 무관하게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