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 기후가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미의 극심한 가뭄으로 설탕과 커피값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 퀸즐랜드의 가뭄은 소고기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동부의 폭설을 동반한 한파는 경기둔화로 이어져 ‘프로즈노믹스(frozenomics·얼어붙은 경제)’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많은 경제학자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새로운 세계적 경기 침체는 ‘기후 위기(weather crisis)’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기상이변을 가정한 경제 모델을 만들어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가뭄에 치솟는 농산물값
설탕값은 최근 빠르게 오르고 있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원당 3월 인도분 가격은 2월 초 파운드당 14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달 28일엔 17.13달러까지 올랐다. 2월 한 달 동안에만 20% 넘게 상승한 것이다. 커피값도 올 들어 60% 가까이 오르는 등 상승세가 가파르다. 세계 설탕 생산의 5분의 1, 커피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브라질의 극심한 가뭄이 주원인이다. 브라질 기상서비스 제공업체 메테오롤로지아는 지난 1, 2월 날씨가 30년 만에 가장 더웠다고 분석했다.
특히 가뭄으로 사탕수수 작황이 최악의 상황이다. 브라질 최대 설탕·에탄올 생산업체 코페르수카르는 올해 생산량을 전년 대비 6%가량 줄이기로 했다. 최대 농산물 생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도 최근 5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앞으로 2~4개월 내 충분한 비가 오지 않으면 주민 2500만명이 식수난에 빠질 전망이다. 지역 쌀값이 최근 30% 이상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소고기의 주 생산지로 가뭄은 소고기 생산량도 끌어내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소 사육 두수는 8700만마리로 1951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세계 3위 소고기 생산국인 호주도 2년째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기온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요 소고기 생산지인 퀸즐랜드와 뉴웨일스에선 소를 먹일 풀밭의 면적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농부들은 사료로 소를 키우려 하지만 브라질의 가뭄으로 옥수수 가격도 많이 올라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결국 애지중지 키운 소를 도살하고 있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현 상황은 재앙 수준”이라며 농가에 2억8700만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공급은 점점 줄어들지만 중국 등 아시아에서 소고기 수요는 점점 늘면서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소고기 가격 인덱스는 올초 2009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인도도 가뭄에 시달리면서 설탕, 목화, 오렌지 주스 등의 가격이 오르는 추세다.
# 안이한 대처가 ‘기후위기’ 주범?
농산물값 상승은 이상 기후가 초래하는 영향의 일부일 뿐이다. 직간접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올해 248년 만에 최악의 겨울 홍수를 겪은 영국 런던이 대표적이다. 폭우와 함께 시속 180㎞에 달하는 엄청난 강풍이 런던을 강타했다. 영국 언론은 이번 홍수로만 최소 6억5000만파운드(약 1조1500억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도 최근 각종 경제지표가 부진하게 나온 것의 주요 원인이 동부 지역에 몰아닥친 한파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월마트 등 유통 업체나 자동차 업체들은 잇따라 실적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자연재해는 아니지만 역시 환경오염으로 인한 중국의 스모그도 심각하다. 매년 봄 중국발 황사에 시달리는 한국 역시 피해를 보고 있다. 이 같은 기후 변화에 따른 피해 규모는 추산조차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각국 정부 당국이 기후 변화가 미칠 파장을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빈 하딩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현재 당국과 자칭 전문가들이 기후 변화를 놓고 대처하는 모습은 5년 전 금융 전문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해 분석하던 태도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5년 전에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위험할 정도로 커졌지만 전문가들은 “점진적인 증가는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며 위기 가능성을 무시했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인 급작스러운 부도 사태가 터지면서 세계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그는 “기후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재앙적인 결과를 가정하고 이를 위해 준비해야 할 때”라면서 “환경오염이 기후 변화를 불러오느냐 아니냐의 소모적인 논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車 연비기준 높이고 탄소세 도입했지만…각국, CO2 감축공조는 실패
세계 각국 정부는 이상기후 발생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큰 방향은 온실가스를 비롯한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는 것이다. 환경오염이 급격한 기후 변화를 야기하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가 간 공조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조치가 ‘교토의정서’ 이행이다. 교토의정서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주요국들이 현재 교토의정서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은 상황이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대형 트럭의 연비 기준을 보다 강화하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를 위해 지난달 18일 관련 부처에 중형 및 대형 트럭의 연비 기준을 새로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인근 식료품 체인점에서 한 연설에서 “대기 오염 없이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가설은 잘못된 것”이라며 “차량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 혁신 부문에서 일자리가 늘고 운전자의 돈을 아껴주는 동시에 경제와 환경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감축시키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2009년부터 주요20개국(G20) 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관련 논의가 시작된 이후 각 회원국은 매년 자발적으로 화석연료 보조금 감축 및 폐지에 관한 이행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일명 ‘탄소세’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내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사는 소비자에게는 세금을 많이 물리고, 배출량이 적은 차를 사면 보조금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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