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무지와 배신의 심리게임…이성과 합리적 사고의 틈을 노린다

입력 2014-03-07 17:48  

[ 김태호 기자 ]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다크나이트’ 를 통해 본 게임이론


“다른 사람들은 너처럼 추악하지 않아.”(배트맨)

배트맨(크리스천 베일 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조커(히스 레저 분)다. 조커는 여느 영웅 영화에서 나오는 악당과는 사뭇 다르다. 이 악당이 원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인간은 악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조커가 처음으로 등장한 배트맨 두 번째 시리즈 ‘다크나이트’(2008년 개봉)의 묘미는 이처럼 조커가 증명하려는 ‘성악설’과 배트맨이 증명하려는 ‘성선설’의 대립에 있다.

영화는 조커를 비롯한 다섯 명의 악당이 은행털이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은행에서 훔친 돈을 나누는 과정에서 보다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 악당들을 살해한다. 이 모든 것은 조커의 계획에서 비롯됐다. 결과적으로 악당 다섯 명 중 살아남은 것은 조커 한 명이다. 물론 조커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돈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인간의 사악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영화 속에는 이처럼 조커가 설치한 덫에 빠져드는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조커 최후의 카드는 ‘죄수의 딜레마’

영화 막바지에는 조커가 인간이 악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후의 카드로 ‘게임’을 제안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커는 죄수들과 경찰이 함께 타고 있는 배와 일반인이 탄 유람선에 각각 폭탄을 설치한다. 죄수들이 탄 배에는 일반인의 배를 날려버릴 기폭장치가, 일반인이 탄 배에는 죄수들이 탄 배를 폭파시킬 기폭장치가 놓여 있다. 그리고 배에는 조커의 목소리가 담긴 방송이 울려 퍼진다.“오늘 밤 실험의 주인공은 여러분이다. 여러분은 다른 배를 폭파시킬 리모컨을 가지고 있다. 나는 밤 12시가 되면 모든 배를 폭파시킬 생각이다. 하지만 그 전에 리모컨을 먼저 누른 배는 살려줄 거다. 결정은 빠를수록 좋을 거야.”

조커의 제안을 들은 사람들은 동요한다. 상대편 배에 탄 사람들이 먼저 기폭장치를 누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일반인이 탄 배에서는 투표가 진행된다. 기폭장치를 누르자는 의견이 70% 이상의 득표를 얻는다. 같은 시간 죄수들이 탄 배에선 경찰이 쥐고 있던 기폭장치를 죄수의 우두머리에게 넘긴다. 남은 시간은 5분. 시간을 지체할수록 사람들의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런 상황은 경제학 게임이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케 한다. 조커는 ‘죄수의 딜레마’에 처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죄수의 딜레마 모형에 따르면 양쪽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스위치를 누르고 함께 자멸하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우월전략’

<표1>은 죄수의 딜레마에 처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과 그 효용을 정리한 것이다. 김사기씨와 박절도씨는 공범이다. 둘이 범행을 함께 자백하면 5년형을 선고받는다. 반면 한 명만 자백할 경우 한 명은 석방, 자백하지 않은 한 명은 15년형을 선고받는다. 두 사람 모두 범행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각각 1년형을 선고받는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은 함께 자백하고 5년형을 선고받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월전략’ 때문이다. 우월전략은 자신에게 언제나 더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전략이다. 김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박씨가 범행을 자백할 경우 자신이 입을 다물면 15년형을 선고받는다. 결국 자신이 자백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요행히 자신이 자백하고 상대방이 자백하지 않을 경우에는 석방될 수도 있다. 둘 다 자백하지 않는 상황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이 같은 판단은 박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둘은 서로 자백하고 5년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조커의 실험은 이런 우월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상대편의 배가 스위치를 누른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먼저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유리하다. 상대가 스위치를 누르지 않더라도 함께 누르지 않으면 결국 조커가 배를 폭파시킬 것이다. 반대의 상황에서도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살 수 있는 유리한 전략인 셈이다.

카르텔 vs 리니언시

현실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응용한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리니언시(자진신고자감면제)다. 기업이 담합 등 공동행위를 자진 신고했을 때 해당 기업에 과징금을 완전 면제하거나 경감해 주는 제도다. 기업 간 담합은 그 특성상 내부자 고발이나 협조 없이는 혐의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이 같은 방법으로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고 있다.

기업의 담합, 즉 카르텔 형성에서도 죄수의 딜레마는 적용된다. 카르텔에 속해 있는 기업이 협정을 준수하는 전략과 몰래 위반하는 전략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표2>는 이 같은 가정과 효용을 나타낸 것이다. 숫자들은 각 기업이 얻는 이윤이다. 조커사와 배트맨사가 가격담합을 유지하고 있을 때 이를 혼자서 위반하고 가격을 몰래 낮추면 소비자는 이 회사로 몰리기 때문에 이익이 늘어난다. 반면 두 회사 모두 위반할 경우 소비자는 그대로인데 가격만 낮추는 꼴이 되면서 두 회사의 이익은 모두 감소한다. 결국 모두 준수하는 것이 최상이지만 각자의 상황에서 볼 때는 카르텔협정을 위반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전략이다. 현실에서 카르텔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카르텔이 비교적 오랜 기간 유지되는 사례도 많다. 기업 간의 카르텔 행위는 반복적인 형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죄수의 딜레마가 ‘반복게임’ 형태를 유지할 경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있고 협조하는 분위기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조커의 실험이 실패한 이유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두 배에 탄 일반인과 죄수들은 모두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다. 조커는 그 사이 배트맨에게 기폭장치를 빼앗기고 사람들이 탄 양쪽 배 모두 무사하게 귀환할 수 있게 된다.

조커 역시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배제해야 할 많은 것이 존재함을 간과했다. 죄수의 딜레마는 상대가 도저히 협조할 수 없는 분위기 아래 이뤄진다. 만약 두 배에 탄 사람들이 휴대폰 등으로 상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면 게임은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또 죄수의 딜레마는 게임이 단 한 번만 이뤄진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죄수의 딜레마가 여러 번 반복되는 양상을 보일 경우 그 결과는 카르텔처럼 달라질 수밖에 없다.자신이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는데 상대가 스위치를 눌렀다면 다음 게임에서는 나 역시 스위치를 누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자신이 스위치를 눌렀는데 상대가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다면? 다음 게임에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조커가 제시한 게임의 경우 양쪽 배에 탄 사람들의 협조는 불가능했고, 반복게임도 아니었다. 따라서 게임이론으로만 본다면 등장인물들의 선택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적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스위치를 건네받은 죄수는 생명줄인 스위치를 바다에 던져버렸고, 폭파를 주장했던 일반인 역시 끝내 스위치를 누르지 못했다. 절대악이 이기는 쪽으로 결말을 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려다.

김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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