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자유무역 지지한 남부…결국 노예제도 폐지

입력 2014-03-08 13:05  

한걸음 더 !


솔로몬 노섭은 목화 농장에서 일했다. 대다수 흑인 노예는 그와 마찬가지로 남부의 목화,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일했다. 이런 농장은 대부분 남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반면 북부와 동부는 제조업 중심이었다. 신발 제조업과 모직, 면직물 산업이 주도적이었다. 중공업도 발달 중이었다. 노동력의 상당수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1845~1855년 매년 유럽에서 30만명씩 이주해왔다. 가난을 피해 미국을 찾은 이들은 배를 타고 처음 도착한 항구 인근의 도시에서 살았다. 95%의 흑인이 남부에 살았고 남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반면 북부에서는 흑인 인구가 1%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남부와 북부의 산업구조가 전혀 달랐던 영향으로 정책에 따른 이해관계도 반대로 나타났다. 북부는 유럽보다 뒤늦은 상공업 육성을 위해 보호관세가 필요했지만 원료를 생산하는 남부는 자유무역을 지지했다. 1856년 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이 창당됐고 1861년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링컨은 보호무역과 국립은행을 통한 연방정부의 화폐 통제, 철도·운하·선박·건설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 등 중상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남북 간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고 북부가 승리하면서 노예제도 역시 철폐의 수순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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