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성미 기자 ] “이대로라면 팬택은 파산할 수도 있습니다. 통신사 규제에 왜 애꿎은 제조사가 멍들어야 합니까?”
지난 7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에 대해 사상 최장인 45일의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진 이후 한 팬택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오는 13일부터 5월 말까지 통신사 2개씩 동시에 영업을 못하게 하는 ‘초강력 제재’를 내렸기 때문이다. 영업정지 기간 중 기기변경까지 제한한 것은 2002년 이후 12년 만이다.
하지만 이번 영업정지로 피해를 보는 건 통신사가 아니라 팬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진 당일 SK텔레콤 주가는 0.71% 내리는 데 그쳤고 LG유플러스는 오히려 1.14% 올랐다. 영업정지 기간 동안 무리한 보조금 지급 등 출혈 경쟁을 안 하면 오히려 기업 재무구조에 긍정적이라는 해석 때문이다.
불똥은 팬택에 튀었다. 지난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여 흑자 구조를 만들었지만 통신사가 영업정지에 들어가면 다시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 시장이 월 150만대 규모이고, 팬택 점유율이 13%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영업정지 기간 팬택은 월 7만~8만대밖에 팔지 못한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팬택의 흑자 마지노선 판매량은 월 20만대다. 지난해 4분기와 올 1, 2월 팬택은 20만대 판매 목표를 달성했다.
팬택 내부에선 최악의 상황으로 ‘워크아웃 취소’ 사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정상화 방안 마련을 위한 실사 기간이 영업정지 기간과 겹치기 때문이다. 실사 결과를 검토한 채권단이 팬택의 회생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워크아웃이 취소되면 팬택의 남은 선택은 법정관리 혹은 파산뿐이다.
팬택은 지난주 방송통신위원회에 통신사 영업정지를 순차적으로 내려줄 것 등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는 13일 방통위가 보조금 대란 주도 사업자에 내릴 추가 제재 땐 영업정지 대신 과징금 규모를 대폭 늘리는 것이 실효성 있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영업정지 기간 동안 통신사 수익성은 개선되고 애꿎은 제조사는 존폐 기로에 서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규제’인지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심성미 IT과학부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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