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ENS "해외 PF관련 CP 491억 상환 못해"
피해 은행들 "대주주 KT의 꼬리 자르기"
[ 김일규 / 김태훈 기자 ] ‘3000억원 대출 사기’ 사건에 휘말린 KT의 자회사 KT ENS가 만기가 돌아온 기업어음(CP)을 갚지 못해 12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KT ENS는 “대출 사기사건 이후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힘들어져 자금 경색이 발생해 어쩔 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출 사기 피해를 입은 은행들은 “KT ENS가 사기 사건과 관련된 돈을 갚지 않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100% 대주주인 KT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KT ENS “자금 경색 어쩔 수 없었다”
강석 KT ENS 사장은 이날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관련된 491억원 규모의 CP를 상환하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날 만기가 도래한 CP는 루마니아에서 진행 중인 태양광사업 PF와 관련된 돈이다. 지금까지 17차례나 만기가 연장됐지만 대출 사기 사건이 터진 뒤 투자자들이 연장을 거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보증을 선 KT ENS가 상환을 해야 하지만 자금 여유가 없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강 사장은 “지난달 20일에도 453억원의 CP 상환 요청을 받아 자체 자금으로 갚았지만 한 달여 만에 만기가 돌아온 이번 CP까지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대출 사기사건 이후 갑작스러운 금융권의 대출 경색 분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선택해 협력사와 투자자들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KT ENS는 네트워크 구축 업무 등을 담당하는 KT의 100% 자회사다. KT 자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KT ENS는 이번에 만기가 도래한 CP를 제외하고도 연말까지 1500억원에 가까운 CP 만기가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마니아 태양광 사업에서는 담보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아 사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황창규 KT 회장 등 현 경영진이 배임에 걸릴 부담까지 떠안으며 계열사를 지원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KT 내부 분석이다. KT 관계자는 “기존 KT 주주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돈 안 갚으려는 꼼수다”
대출 사기 피해를 입은 은행들은 KT ENS의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사기와 연루된 돈을 갚지 않기 위한 꼼수”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출 사기를 당한 하나은행은 1624억원을, 농협은행과 국민은행은 각각 296억원을 KT ENS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채권 은행들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며 “매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 방안을 찾고 있었는데 법정관리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KT ENS의 법정관리 신청이 100% 대주주인 KT의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국내 선두 정보기술(IT) 기업인 KT가 자회사인 KT ENS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도록 놔둔 것은 책임을 지기 싫어서 사용한 꼼수”라고 주장했다. KT가 증자 등을 통해 자회사를 돕는 게 당연한 데도 나 몰라라 했다는 주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오너가 없고 공기업 색채가 짙은 KT에서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은행들은 KT ENS의 법정관리와 별개로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채권 신고를 하면 KT ENS 측이 채무를 부인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과 농협은행도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34억원의 피해를 본 BS저축은행을 포함해 OBS, 현대, 인천, 우리금융, 아산, 민국, 공평, 페퍼저축은행 등도 모두 800억원에 이르는 대출금 회수를 위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편 은행들은 이번 사기피해로 대규모 ‘대손충당금 폭탄’을 맞았다. 하나은행은 895억원을 충당금으로 반영했다. 국민은행은 297억원 전부를, 농협은행은 192억원을 충당금으로 각각 쌓았다.
김일규/김태훈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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