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가 규제를 행사할 때는 나름의 근거를 갖고 한다. 서울반도체가 180m 거리에 있는 두 공장 간 통로를 만드는 데 8년이나 피를 말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지방자치단체의 해당 규정에 발목이 잡힌 탓이다. 6m 거리에 공장을 증축하려는데 별도의 폐수처리가 없다고 퇴짜 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경련이 발표한 서비스 분야 황당규제 94건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이런 규정들이 어디서 왔나.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다. 규제를 꾸역꾸역 쏟아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국회다. 새누리당은 관료들의 행태가 문제라지만 법 자체를 손질하지 않는 한 이런 덩어리 규제를 들어낼 다른 방도가 없다. 툭하면 규제 입법에 앞장섰던 국회부터 반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준법이 투쟁이 되는 그 문제의 법은 어디서 왔나. 모조리 국회다.
물론 규제를 곧 권력으로 아는 관료사회도 문제다. 동일 규제를 놓고 부처들이 각자 딴 목소리를 내는 해프닝도 많다. 지금도 산업부와 동반위는 중기적합업종 제한으로, 미래부와 식약처는 스마트의료기기 건으로, 문체부와 서울시는 호텔 신축 문제로 다투는 중이다. 한쪽에서는 풀자 하고, 다른 쪽에선 묶자는 것이어서 부지하세월이다. 규제비용에 대한 부처별 인식과 판단이 제각각이다. 관료의 재량이나 행정지도 등 소위 그림자 규제는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충분히 해결될 일도 관료가 안 되는 쪽으로 해석하면 방법이 없다. 이래저래 골병드는 건 국민의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제약이다.
규제는 결국은 국회로 귀결된다. 국회가 행정부를 다그쳐 재량권을 남용하게 만들고 포퓰리즘으로 흔들어 버리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목이 쉬도록 규제완화를 외쳐도 헛수고다. 규제의 시발점도 종착지도 국회다. 새누리당은 과연 의지를 세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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