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민 기자 ] ‘서울 종량제 봉투값이 내년에 인상된다’는 본지의 보도가 나간 직후인 지난 10일 서울시 관계자들로부터 잇따라 전화를 받았다. 이들은 “서울의 종량제 봉투값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며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한결같이 “지방선거 때문에…”라고 말끝을 흐렸다.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에게 수차례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보도 이후 서울시는 “봉투값 인상은 전혀 검토한 바 없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서울 중구 기준으로 20L들이 종량제 봉투값은 340원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봉투값이 400~700원대인 것과 비교된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광주시(74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봉투값이 2005년 이후 동결돼 인상을 통한 가격 현실화가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급성을 인정하면서도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지는 현안은 봉투값 인상 문제뿐만이 아니다. 다산콜센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한강 수중보 철거 등 찬반 여론이 갈린 민감한 현안은 대부분 6월 이후에 발표될 예정이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정책 발표는 선거 이후로 미루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물론 서울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방선거일까지는 2개월 넘게 남았지만 지방행정이 온통 선거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갈수록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 구청장이 재선을 노리는 A구청은 구청장이 현장방문이 빡빡해 공식 간부회의조차 열리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직 단체장이 바뀔 경우를 대비해 업무에서 손을 놓은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는 게 구청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벌어진 행정 공백도 우려된다. 공직자 사퇴시한인 지난 6일까지 현직에서 물러난 지방 공무원은 150여명에 달한다. 전북 전주시는 시장과 부시장이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모두 사퇴했다.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가 부활한 지 올해로 20년째다. 지방선거에 따른 행정 마비 등 폐해가 근절되기는커녕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게 지방자치 20년째를 맞은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인 것 같아 걱정스럽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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