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성미 기자 ] 핵물질 관리 기준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원자력 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원자력방호방재법)’ 때문에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큰 망신을 당하게 생겼다.
2012년 2차 핵안보정상회의 주최국이었던 한국은 “‘핵테러억제협약’과 ‘개정핵물질방호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관련 법안인 원자력방호방재법 개정안은 국회 소위에 계류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회의 주최국이 약속을 안 지켰다’는 창피를 당하게 생겼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이 꼬인 것은 성격상 이 법안과 전혀 관련이 없는 방송법 개정안 등을 연계해 고의적으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야당의 탓이 크지만 책임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원안위는 지난 2월 임시국회가 다룰 법안 목록에 원자력방호방재법이 빠졌는데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은철 원안위원장이 직접 국회를 찾아가 설득을 벌였다지만 전혀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1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서야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2012년 8월 법안을 내면서 그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고 여야 의원들도 법안 통과에 동의했다고 판단했는데 결과적으로 잘못됐습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특별히 이 얘기를 하기 위해 기자들을 만난 것은 아니다. 이날 간담회는 오래전에 잡혀 있던 일정이었다. 기자들이 ‘발등의 불’격인 원자력방호방재법 문제를 묻자 마지못해 답변을 하는 듯했다. 그는 “원자력방호방재법 통과는 국가 체면이 달린 문제”라며 “3월에 꼭 처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보다 더 답답한 쪽은 국민들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18일 원자력방호방재법의 국회 계류에 유감을 표명하기 전까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이 위원장의 판단 착오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다. 그의 말대로 국가의 위신이 걸린 문제다.
심성미 경제부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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