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 요즘…40년동안 공무원 머리 만진 정원영 씨, 이한기 前총리부터 노대래 위원장까지 '단골 손님'

입력 2014-03-19 21:59   수정 2014-03-20 04:08

공무원 꿈꾸다 이발사로 전향
정부청사 이전따라 세번째 '개업'
"이발은 얼굴 완성하는 종합 예술"



[ 주용석 기자 ] 정부세종청사에 40년 넘게 공무원들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이발사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세종청사 2동 건물 1층에서 구내 이발소를 운영하는 정원영 씨(64·사진). 그는 1970년대 서울 광화문 인근의 옛 경제기획원 구내 이발소를 시작으로 1980년대 조달청(서울 반포) 구내 이발소에 이어 세종청사 구내 이발소까지 세 차례나 정부청사 내 이발소를 개설한 이색 기록을 갖고 있다.

정씨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지난 7일 노대래 공정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유머와 쾌활함, 장기를 보면 마치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의 주인공 피가로가 연상된다”고 정씨를 소개하면서다. 노 위원장은 2010년 조달청장 시절부터 단골 고객이 돼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 그의 이발소를 찾는다.

17일 찾아간 정씨의 이발소 앞에는 ‘헤어 디자이너 정원영의 VIP 고객’이란 입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동안 정씨가 머리를 만진 단골 명단인데 여기에는 노 위원장뿐 아니라 지금은 고인이 된 이한기 전 국무총리와 정인용 전 부총리를 비롯해 변양균 박봉흠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광림 류성걸 장병완 의원, 변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 40여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중 상당수는 국·과장 시절부터 정씨가 머리를 만졌다고 한다. 정씨는 “제가 40년 이상 이 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아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입간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강원 원주시에서 태어난 정씨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실제 20대 초에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 시대 경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부친이 ‘순사질은 안 된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진로를 바꿔 이발사 자격증을 땄다. 1970년대 초 결혼 후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그는 마침 비어 있던 경제기획원 구내 이발소에 취직했다.

공무원이 될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의 이발 솜씨를 눈여겨본 신윤재 당시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장이 ‘공무원을 시켜줄 테니 조사통계국 건물에 구내 이발소를 열자’고 제안한 것. 조사통계국은 통계청 전신으로 당시 종로경찰서 옆에 별도 건물이 있었다. 정씨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1998년까지 20년 가까이 ‘공무원 신분’으로 가위를 들었다.

조달청 본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뒤 서울조달청과 공정위 직원들의 머리를 만지던 그는 정부청사의 세종시 이전에 맞춰 지난해 1월 세종청사로 자리를 옮겼다. 부인 이향애 씨(62)와 함께 조치원으로 이사도 했다. 이씨는 현재 정씨 곁에서 손님들의 면도와 머리 감기는 일을 돕고 있다. 정씨는 “옛 단골 손님들의 요청이 많을 땐 가끔 서울로 출장 이발을 다녀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발사란 직업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정씨는 “깎기만 하면 다 이발이 아니다. 이발은 두상, 머릿결, 얼굴 모양에 따라 어떻게 깎을지 고민해야 하는 종합 예술”이라며 “요즘 젊은 이발사들은 너무 기계적으로 깎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말솜씨가 좋아 사회자로 뽑히거나 주례를 선 적도 많다. 과거 행시 13회 공무원들의 연말 송년회 사회를 3년 연속 맡아 당시 기수 회장이던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를 명예회원으로 올리기도 했다.

세종=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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