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5학년이다."
새벽 5시30분, 대학생 A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전 8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서 면접에 대비한 상식을 쌓기 위해 1시간 동안 신문을 읽는다. 수업이 있는 날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과제를 하거나 쪽지시험 공부를 하느라 점심은 우유로 간단하게 때우는 경우가 많다.
수업이 없는 날은 오전에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전날 공부한 것을 복습한다. 오후에는 주로 자격증 시험 공부나 과제를 한다. 수업의 예습·복습도 빼놓을 수 없다. 졸업시험에 대비해 전공도 틈틈이 봐야한다. 이렇게 9~10시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오면 11시가 넘는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서 어학을 전공하는 9학기생 A씨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일상이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빡빡한 일과에 만성적인 수면부족과 피로에 시달린다. 지난해에는 6kg이나 빠졌다. A씨는 "하루라도 건너뛰면 일주일이 고달파진다"고 말했다.
저학년 때 A씨는 큰 포부를 가진 학생이었다. 어학 전공이 적성에 맞아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었다. 성적도 우수해서 초정을 받아 외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수요가 많은 언어가 아니어서 대학원에 진학한다 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3학년 때 알았다. 지금까지 대출받은 학자금도 큰 부담인데, 더 비싼 대학원 학비 앞에선 눈앞이 막막해졌다. 그때부터 뒤늦게 취업 전쟁에 발을 들였다.
그는 대학원을 생각하고 어학공부만 해온 탓에 변변한 공모전 수상 경력도, 자격증도 없다. 취업 전쟁에서 A씨는 맨손으로 싸워야 할 지경이었다. 많은 기업들은 상경계 전공자를 우대했다. 취업준비생 중에서도 상경계 전공자가 아닌 학생은 드물다. 4학년 1학기, 졸업을 앞둔 A씨는 이중전공을 '울며 겨자 먹기'로 상경계로 변경했고 대학교 5학년 대열에 서게 됐다.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어서 난리지만 마냥 취직할 수도 없다. A씨는 "제가 지금까지 한 노력이 어떻고 학자금 대출 빚이 얼만데요. 게다가 부모님 노후나 제 미래는 또 어쩌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현재의 청년 구직자들은 IMF와 금융위기로 작아진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다. 경제가 끝없이 성장하며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던 과거와는 달리 경기가 부침을 겪는 모습을 보며 무엇보다도 안전한 길을 걷고 싶어하게 됐다. 안정적인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을 선호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을 만족시킬만한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A씨는 "쓸모 있는 능력과 쓸모 없는 보여주기 스펙간의 구별 기준을 알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기업이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어떤 능력이 직무에 필요한지 구체적인 기준을 모르니깐 수치로 나타낼 수 있고 눈에 보이는 자격증이나 어학 성적, 학점에만 매달린다" 며 "다들 그런 스펙이 있으니깐 나만 없으면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기업의 필요를 만족시키고 취업준비생들이 맞춤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2014년의 대한민국은 '취준(취업준비) 공화국'이다. '취업 몇 종 스펙' 같은 단어가 유행한다. 요즘엔 금융 3종으로도 모자라 금융 5종 자격증 세트까지 등장했다. 대학가나 번화가에는 취업 대비 학원이 성업한다. 스펙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자연히 취업준비생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진다.
대한민국에서 대학교 5학년으로 사는 것에 대해 묻자 A씨는 "5학년의 현실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렇게 노력해도 다 같이 열심히 하니깐 된다는 보장도 없다" 며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그저 당장 할 일에 집중하며 하루를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제발 내년 이맘때는 웃고 있자." A씨를 비롯한 모든 대학교 5학년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한경닷컴 오수연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 4년) suyon9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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