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21) 21세기 최고의 비정규직 '전문직 프리랜서'

입력 2014-03-21 17:06  


최근 들어 전문직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무한경쟁’이다. 전문직종의 종사자들조차 무한경쟁의 시대로 내몰리면서 대표적 전문직인 의사들조차 과잉공급을 우려해 의대정원 축소를 정부에 요청하는가 하면, 대구지역에서는 연간 단 한 건도 수임하지 못한 변호가 무려 31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한때 사윗감 1순위였던 법조인 의료인들이 예전과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비단 법조인과 의료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흔히들 ‘사’자 직업으로 불리면서 전문직이라는 직군에 포함되었던 세무사, 회계사 등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문직의 위상을 과시하며 자신의 능력을 보다 더 다양한 영역에서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최고의 기업에서 훈련받았거나 자신만의 고유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지만 어느 단체에도 소속되어 일하지 않고 프로젝트 단위로 활동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A기업 프로젝트에서 일하다가도, 내일은 B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슈퍼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전문직 프리랜서’들이다.

전문가 집단도 무한경쟁

전문직 프리랜서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근무 형태를 취함으로써 무한경쟁의 울타리를 탈출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전문직 프리랜서들도 한때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에서 혹은 자신만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고액의 연봉을 받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에 다양한 기업을 파트너로 삼아 자신의 능력을 활용한다. 조직이나 기업에서의 연봉보다는 낮지만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리며 생활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결코 부족하지 않은 대가를 받고 있으며, 프로젝트 참여 여부를 자신이 결정하고 시간을 활용하여 높은 삶의 질도 함께 누리고 있다. 전문직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사업체를 운영하든, 기업에 소속되든 ‘정규직’의 지위를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전통적인 사고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근무 형태인 것이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직 출현은 무한경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조류가 전문가 집단으로까지 밀려들어왔다는 점이 원인이지만, 경제학적으로는 ‘거래비용’이라는 개념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거래비용이란 당사자들이 만나서 상호이익이 되는 거래행위를 할 때 발생하는 일체의 비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계약을 통해 거래하게 되는 경우 계약 전에는 계약서의 조항들이 제대로 포함되었는지를 점검하고, 계약 이후에는 사전에 합의한 조건에 맞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노력 일체가 거래비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비용은 거래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데, 미국의 경제학자 올리버 윌리엄슨은 거래비용에 기초를 둔 ‘기업이론(theory of the firm)’으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낮아지는 ‘거래비용’

기업이론은 높은 거래비용 때문에 대기업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제철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제철회사의 용광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쇳물을 제강업자가 구입하여 각종 철제품으로 만들어내는데, 이 공정은 쇳물이 식기 전에 이루어져야 효율적이다. 쇳물이 식어버리면 다시 녹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과다하게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제철회사가 용광로의 쇳물을 식지 않게 해주는 대신 엄청난 비용을 요구한다면 제강회사 입장에서는 제품을 만들지 않느니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사전에 방지해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다양한 측면에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들이 결국 거래비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만약 어느 한 사업자가 만약 제철회사와 제강회사를 모두 소유할 수 있다면 거래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기업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대기업의 존재 원인이다.

전문직 프리랜서가 확산되는 이유도 이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이론은 결국 자원이나 인재를 사내에 두고 있는 것이 외부시장에서 구하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직 분야에서만큼은 기존의 이러한 생각이 도전을 받고 있는 듯하다. 점차 전문 인력이 늘어나게 되면서 이들 인력이 거래되는 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는 전문직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거래비용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회계사나 법무사, 컨설턴트와 같은 고급인력을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해 내부화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전문 능력을 보유한 누군가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美 프리랜서 2000만명

이처럼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해 프리랜서 전문직을 채용하려는 움직임은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2011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58%가 향후 모든 직급에서 계약직을 늘리겠다고 대답했으며, 이는 해외에서 전문가를 찾아 채용하겠다는 응답보다 거의 세 배나 높은 수치였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 내 프리랜서 근무자가 2000만 명에 육박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고급인력의 배출 속도를 함께 감안해볼 때 프리랜서 전문직 종사자가 약 300만 명 가까이 된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부문에서도 프리랜서 전문가를 채용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공공부문에서의 업무는 전문성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업무를 공무원들이 담당했는데, 최근 들어 전문 지식이 필요한 업무에는 ‘개방형 직위’라는 이름으로 계약직 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이라고 하면 특별한 능력이 없고 임금이 적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거래비용의 관점에서 살펴본 프리랜서 전문직의 확산현상은 이러한 생각이 머잖아 사라지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노동법, 노조 등으로 기업 입장에서 노동력을 유연하게 활용하기 어려워 비정규직의 대다수가 중간 아래의 직군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점차 상위직군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언제나 다양한 인재를 활용하기를 원한다. 전문직을 채용하기 위한 거래비용이 낮아졌다면 기업 입장에서 고위직, 전문직이라 하더라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대의 기업들은 생산과정의 많은 부분을 위탁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프리랜서 전문가의 채용도 그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입장에서 노동력도 생산요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리랜서 전문가의 수요 증가는 시장에서 희소성을 잃어버린 고급 인력들에게는 새로운 돌파구이자, 기업들에는 변화와 혁신을 위한 새로운 동력원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무한 경쟁이 가져다 준 전문직의 유연함은 급변하는 경제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신(新)장인’으로서 전문직의 위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이유이다.

■ 거래비용

거래비용이란 당사자들이 만나서 상호이익이 되는 자발적 교환 및 거래행위를 할 때 발생하는 거래성립, 유지, 감독 등에 수반되는 일체의 비용을 의미한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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