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스토리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26) 1930년대 대공황1 : '검은 화요일'의 배경
1929년 10월29일 화요일…美 주식시장 갑작스레 붕괴
4년간 물가 33% 하락…실업률 25%까지 급등
경제학자 프리드먼·슈워츠
평범할 수 있던 경기침체가 대공황으로 변화된 원인에 Fed의 긴축정책을 지목
통화량의 지속적 증가와 주택·자산 가격의 폭락이 유례없는 대공황 만들어
1930년대의 전 세계적인 대공황은 그 규모와 기간에서 다른 경제적 사건들과 비교할 수 없는 대재앙이었다. 대공황의 진앙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1929년부터 1933년까지 4년간 산업 생산이 37% 감소했고, 물가는 33% 하락했으며, 실질 국민총생산은 30%나 감소했다. 실업률은 5%에서 25%까지 급등했고 미국 경제는 1930년대 내내 15% 이상의 고실업률에 시달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와 같이 엄청난 경제적 충격을 주었던 대공황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은 ‘검은 화요일’이라 불리는 1929년 10월29일 주식시장의 갑작스러운 붕괴였다. 주식시장 붕괴는 그 이전까지의 주식시장이 거품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을 포함한 자산시장의 거품을 초래한 원인이 대공황을 촉발한 단초가 됐을 것이다. 반면 주식시장의 붕괴로 인한 부의 감소와 그에 따른 수요 감소가 대공황을 촉발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주식시장의 붕괴를 초래한 원인을 대공황의 원인으로 볼 것이다. 수십년간의 논쟁과 연구에 따른 경제학계의 대체적인 합의는 1920년대 말 미국의 긴축정책이 대공황을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주식시장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정책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는 하나 대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공황이 발발하기 직전인 1920년대의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에 미국 경제는 보기 드문 호황을 누렸으나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증폭된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먼저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국제수지 불균형의 조정 역할을 했던 금본위제의 실패로 국제통화제도의 취약성이 증폭된 점이다. 1920년대 대부분 국가는 금본위제로 복귀했으나 금본위제의 국제수지 조정 능력은 상당히 제약됐다. 금본위제 하에서 적자국은 금의 유출과 더불어 통화량 감소와 이자율 상승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감수하는 반면 단기자본이 유입됨으로써 적자가 청산됐다. 그러나 국제수지 불균형에 따른 통화량 변화를 불태화시키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금본위제의 국제수지 조정 기능은 약화됐고 국제통화제도의 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증폭됐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에 따른 과소소비를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이에 따라 소비성향이 낮은 부유층에 자원이 집중돼 소비지출수요가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유층의 대량소비 풍조가 만연했던 1920년대에 실제 소비지출이나 국민소득 대비 소비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1차산품 시장의 변화도 대공황과 관련지어 언급되곤 한다.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곡물 수출이 중단되자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신대륙 국가들의 농산물 생산과 수출이 증대됐으나 전후 유럽의 곡물 생산이 재개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이와 같은 가격 폭락은 1차산품 수출국들에 타격을 주었다. 미국의 경우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가부채가 누적되고 농촌지역 은행들의 파산으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대공황 촉발에 기여했을 가능성은 있다. 농촌 지역을 진원지로 한 은행 파산의 공포가 확산돼 1930년 10월 1차 은행위기가 발생했다. 이후 1933년까지 지속된 연이은 은행위기의 발발은 미국의 은행시스템을 붕괴시켰다.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1963년에 발표된 ‘미국 화폐사’에서 Fed가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에 다소 심각했지만 평범할 수 있었던 경기침체가 대공황으로 전환됐다고 주장했다. 먼저 1928년 봄부터 1929년 10월 주식시장 붕괴 시기까지 지속된 투기 억제를 위한 의도적인 긴축적 통화정책이 있었다. 1930년 10월부터는 대규모 은행 도산, 뱅크런 등 은행위기가 확산돼 은행시스템이 붕괴됐는데도 Fed는 은행 도산과 이에 따른 통화량 급감을 막을 적절한 정책대응, 예를 들면 본원통화 공급과 같은 정책대응을 하지 않았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은행위기의 지속에도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해 나타난 통화량 급감이 없었다면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해석이다.
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통화론적인 해석은 경제가 급락했던 1929~1933년 4년간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통화량 감소가 주기적인 경기침체를 사상 유례없는 대공황으로 전화시킨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1920년대 후반에 나타난 경기침체가 단순히 주기적인 경기침체였는지 아니면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난 심각한 공황이었는지 여부다.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1920년대 내내 물가수준이 안정적이었음을 지적하면서 192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긴축적 통화정책의 효과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주택시장 거품이 극심했던 2000년대를 제외하고 역사적으로 주택시장의 붐이 전국적으로 나타났던 유일한 시기였다. 1922년부터 통화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주택 가격은 급등해 1920년대 중반 정점에 달했다가 대공황을 전후해 급락과 동시에 주택대출의 대규모 부도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통화량의 증가와 그에 따른 주택시장과 주식시장의 거품, 그리고 자산시장 거품 붕괴가 주기적인 경기침체가 아닌 심각한 공황을 촉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은 금본위제의 역할 축소에 따른 국제통화제도의 취약성, 농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농촌 지역의 은행 파산 등의 여건 하에서 주택,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로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투기 억제를 목적으로 한 1920년대 후반의 긴축적 통화정책과 Fed의 은행위기 방치에 따른 통화량 급감을 대공황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송원근 <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 >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26) 1930년대 대공황1 : '검은 화요일'의 배경
1929년 10월29일 화요일…美 주식시장 갑작스레 붕괴
4년간 물가 33% 하락…실업률 25%까지 급등
경제학자 프리드먼·슈워츠
평범할 수 있던 경기침체가 대공황으로 변화된 원인에 Fed의 긴축정책을 지목
통화량의 지속적 증가와 주택·자산 가격의 폭락이 유례없는 대공황 만들어
1930년대의 전 세계적인 대공황은 그 규모와 기간에서 다른 경제적 사건들과 비교할 수 없는 대재앙이었다. 대공황의 진앙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1929년부터 1933년까지 4년간 산업 생산이 37% 감소했고, 물가는 33% 하락했으며, 실질 국민총생산은 30%나 감소했다. 실업률은 5%에서 25%까지 급등했고 미국 경제는 1930년대 내내 15% 이상의 고실업률에 시달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와 같이 엄청난 경제적 충격을 주었던 대공황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은 ‘검은 화요일’이라 불리는 1929년 10월29일 주식시장의 갑작스러운 붕괴였다. 주식시장 붕괴는 그 이전까지의 주식시장이 거품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을 포함한 자산시장의 거품을 초래한 원인이 대공황을 촉발한 단초가 됐을 것이다. 반면 주식시장의 붕괴로 인한 부의 감소와 그에 따른 수요 감소가 대공황을 촉발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주식시장의 붕괴를 초래한 원인을 대공황의 원인으로 볼 것이다. 수십년간의 논쟁과 연구에 따른 경제학계의 대체적인 합의는 1920년대 말 미국의 긴축정책이 대공황을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주식시장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정책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는 하나 대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공황이 발발하기 직전인 1920년대의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에 미국 경제는 보기 드문 호황을 누렸으나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증폭된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먼저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국제수지 불균형의 조정 역할을 했던 금본위제의 실패로 국제통화제도의 취약성이 증폭된 점이다. 1920년대 대부분 국가는 금본위제로 복귀했으나 금본위제의 국제수지 조정 능력은 상당히 제약됐다. 금본위제 하에서 적자국은 금의 유출과 더불어 통화량 감소와 이자율 상승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감수하는 반면 단기자본이 유입됨으로써 적자가 청산됐다. 그러나 국제수지 불균형에 따른 통화량 변화를 불태화시키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금본위제의 국제수지 조정 기능은 약화됐고 국제통화제도의 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증폭됐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에 따른 과소소비를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이에 따라 소비성향이 낮은 부유층에 자원이 집중돼 소비지출수요가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유층의 대량소비 풍조가 만연했던 1920년대에 실제 소비지출이나 국민소득 대비 소비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1차산품 시장의 변화도 대공황과 관련지어 언급되곤 한다.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곡물 수출이 중단되자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신대륙 국가들의 농산물 생산과 수출이 증대됐으나 전후 유럽의 곡물 생산이 재개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이와 같은 가격 폭락은 1차산품 수출국들에 타격을 주었다. 미국의 경우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가부채가 누적되고 농촌지역 은행들의 파산으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대공황 촉발에 기여했을 가능성은 있다. 농촌 지역을 진원지로 한 은행 파산의 공포가 확산돼 1930년 10월 1차 은행위기가 발생했다. 이후 1933년까지 지속된 연이은 은행위기의 발발은 미국의 은행시스템을 붕괴시켰다.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1963년에 발표된 ‘미국 화폐사’에서 Fed가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에 다소 심각했지만 평범할 수 있었던 경기침체가 대공황으로 전환됐다고 주장했다. 먼저 1928년 봄부터 1929년 10월 주식시장 붕괴 시기까지 지속된 투기 억제를 위한 의도적인 긴축적 통화정책이 있었다. 1930년 10월부터는 대규모 은행 도산, 뱅크런 등 은행위기가 확산돼 은행시스템이 붕괴됐는데도 Fed는 은행 도산과 이에 따른 통화량 급감을 막을 적절한 정책대응, 예를 들면 본원통화 공급과 같은 정책대응을 하지 않았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은행위기의 지속에도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해 나타난 통화량 급감이 없었다면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해석이다.
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통화론적인 해석은 경제가 급락했던 1929~1933년 4년간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통화량 감소가 주기적인 경기침체를 사상 유례없는 대공황으로 전화시킨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1920년대 후반에 나타난 경기침체가 단순히 주기적인 경기침체였는지 아니면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난 심각한 공황이었는지 여부다.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1920년대 내내 물가수준이 안정적이었음을 지적하면서 192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긴축적 통화정책의 효과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주택시장 거품이 극심했던 2000년대를 제외하고 역사적으로 주택시장의 붐이 전국적으로 나타났던 유일한 시기였다. 1922년부터 통화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주택 가격은 급등해 1920년대 중반 정점에 달했다가 대공황을 전후해 급락과 동시에 주택대출의 대규모 부도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통화량의 증가와 그에 따른 주택시장과 주식시장의 거품, 그리고 자산시장 거품 붕괴가 주기적인 경기침체가 아닌 심각한 공황을 촉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은 금본위제의 역할 축소에 따른 국제통화제도의 취약성, 농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농촌 지역의 은행 파산 등의 여건 하에서 주택,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로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투기 억제를 목적으로 한 1920년대 후반의 긴축적 통화정책과 Fed의 은행위기 방치에 따른 통화량 급감을 대공황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송원근 <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