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지만 저렴한 갤로퍼…오프로드 주행에 적격
운전자 3000만명 시대입니다. 자동차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제는 자동차와 함께 있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단순히 운전하는 시대에서 즐기고 공유하는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동호회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친목 도모, 정보 교류, 소비자 보호 등 다양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한경닷컴이 경상용차 다마스부터 수입차 성장을 이끌고 있는 아우디까지 다양한 차종의 동호회를 찾아 그들이 풀어놓는 재밌는 이야기들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 최유리 기자 ] 재산 목록 1~2호에 꼽히는 자동차. 이런 자동차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몸에 생채기가 난 듯 쓰라림을 느끼는 게 보통이다. 하물며 자동차에 빠진 동호회는 어련할까.
그러나 예상을 보기 좋게 빗겨간 동호회가 있다. 여기저기 진흙을 묻히는 것쯤은 예삿일이다. 차에 난 흠집을 훈장처럼 여기고 범퍼가 찌그러져도 개의치 않는다. '차에 대한 열정은 뜨겁게, 파손에는 쿨하게'를 외치는 갤로퍼 동호회 '갤럽이노'의 얘기다.
오프로드 주파가 특기인 갤럽이노는 주말이면 전국 각지로 떠난다. 진흙밭과 자갈길, 돌산을 가리지 않는다. 충청남도 금산군에 위치한 양각산도 다양한 험로를 경험할 수 있어 이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지난 16일 갤럽이노의 양각산 주행에 동행했다.
◆ "차로 못 가는 곳은 없다"…오프로드 매력에 빠진 이들
전국구 갤로퍼 동호회 중 가장 많은 회원수(2만2500명)를 가진 곳답게 갤럽이노에는 별난 이들이 많다. 평소에는 고급 세단 제네시스로 안락한 승차감을 즐기다 동호회만 오면 돌변하는 회원, 갤로퍼 튜닝과 오프로드 주행 모두 포기할 수 없어 두 대를 번갈아 타는 회원까지 각양각색이다.
삼부자가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는 길태은 씨(29)는 이 중에서도 명물로 꼽힌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오프로드의 세계로 끌어들인 그는 이날도 가족과 함께 양각산을 찾았다.
"강원도 눈길에 갇혀 고생했던 경험을 계기로 사륜구동인 갤로퍼를 구입했습니다. 이후 재미삼아 가입했던 동호회에서 오프로드의 매력을 알게됐죠. 혼자만 즐기기엔 너무 재밌어 남동생과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어요. 결국 한 집서 갤로퍼를 세 대나 몰게 됐습니다."
동호회 운영자 이건영 씨(36)도 자타가 공인하는 갤로퍼 마니아다. 1991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총 3대의 갤로퍼를 몰았다. 노란색 내장재로 손수 꾸민 인테리어부터 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갤로퍼에 감탄한 것도 잠시. 양각산 입구에 들어서자 차는 숨겨둔 발톱을 드러냈다. 진흙 구덩이에 몸을 던지더니 크고 작은 바위 길에 거침없이 들어섰다.
차 안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디스코팡팡은 저리 가라할 정도의 덜컹거림에 몸이 이리 저리 쏠렸다. 진동이 쉼 없이 이어지자 속까지 메슥거렸다. 동승한 것이 후회될 쯤 기자에게 운전대를 넘기는 운영자.
장애물 탓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차체를 붙잡고자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엔진 토크 1000~2000rpm을 유지하면서 진흙밭처럼 빠지기 쉬운 곳에선 속도를 내야한다. 넘지 못할 산처럼 보였던 바위도 우찌근하고 넘어서자 짜릿함이 몰려왔다. 그제서야 산과 들의 시원한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오프로드 주행은 직접 경험해봐야 그 재미를 알 수 있습니다. 절대 갈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정복하는 매력이죠. 장애물이 있어도 피하거나 치우지 않고 정면돌파 하는 것, 그게 갤럽이노의 모토랄까요."
◆ 단종된 갤로퍼 고집하는 이유는…'기계식 주행감·저렴한 가격'이 매력
'질주하는 말'을 뜻하는 갤로퍼는 1991년에 출시됐다. 특유의 듬직함과 넉넉한 실내 공간으로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차량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2001년 단종 때까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의 대중화를 이끈 모델이기도 하다.
레저 열풍을 타고 수없이 쏟아지는 SUV 중 단종된 갤로퍼를 고집하는 것도 차가 가진 옛스러움 때문이다.
"전자식 엔진을 얹은 차들과 달리 기계식이라 손길이 닿는 대로 반응합니다. 아날로그한 감성이 살아있는 게 매력이죠. 단종된 차량이지만 현대모비스가 부품을 생산하고 있어 특별히 불편한 점도 없습니다."
중고차와 부품 가격이 싸다는 점도 오프로드에 적합한 이유로 꼽았다. 연식과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100만~300만원의 가격으로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다.
"성능이 더 좋은 고급 SUV도 많지만 비싼 차를 험로에서 즐길 수 있을까요? 차량 파손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오프로드 동호회에는 저렴한 갤로퍼가 적격입니다. 투박하지만 그만큼 튼튼하기도 하고요."
오프로드 주행을 일삼다보니 예상치 못한 해프닝도 자주 일어난다고 이 씨는 말했다.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거나 험로에 갇히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주행 중에도 차량들은 진흙탕이나 돌구덩이에 빠졌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차가 빠져 움직이지 못하자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차 안에 있던 장화를 신고 나와 빠진 깊이를 확인하고 앞선 차량과 로프로 연결해 차를 끄집어냈다. 차량 구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갤로퍼 안에는 삽을 비롯한 각종 장비가 항시 대기 중이다.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오프로드 길을 달리고 차를 구난하다보면 몸살이 날 때도 있어요. 그래도 포장도로를 달리다보면 금새 오프로드가 그리워집니다. 갤로퍼라는 재밌는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는 놀이터이니까요."
금산=한경닷컴 최유리 기자 now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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