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던 개인적 불행 끝에 선택
전·현직 직장 동료 등 힘 보태줘 감사
색소폰·마술 실력 수준급인 '半광대'
[ 이해성 기자 ]
“우리 언니들 정말 예뻐. 동심으로 돌아가 다같이!”
지난 22일 경기 남양주 호평동 햇살요양원. 전·현직 세무공무원 및 각계 인사로 구성된 국세청 사랑나눔봉사단(폰콰이어) 단장 김경곤 서울 역삼세무서 재산3주무계장(52)은 공연에 앞서 이렇게 외쳤다. 과수원길 유정천리 색소폰 합주가 끝나자 황갑송 씨(50)의 구성진 단독 창이 이어졌다. 창이 끝나자 김 단장이 7개 링으로 마술을 선사했다. 유명 외제차 엠블럼, 올림픽 오륜기 등을 자유자재로 펼쳤다 접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술을 펼치며 맨 앞줄 할머니들에게 “뽀뽀해줘!”라고 연신 얼굴을 들이대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의 분투 덕일까. 거동이 힘들어 병실에 누워만 있던 노인들도 간병인의 도움으로 공연장인 2층 복도로 속속 모여들었다.
김 단장은 2004년 봉사단을 만들었다. 모친의 치매 발병, 동생의 사업 실패, 상처(喪妻)…. 끊이지 않는 불행에 자살을 생각하던 그였다. 삶의 벼랑 끝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와의 만남 등 몇 건의 사건. 이후 김 단장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난 뒤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광대 그 모습 자체로 공연에 나설 수 있는 건 요양원 생활을 하다 하늘로 돌아가신 모친 생각이 절절해서다.
지난 10년간 봉사단은 매주 토요일 제주 속초 경북영천 영종도 등 전국의 보육원 재활원 요양원 교도소 등 시설을 찾으며 공연을 펼쳐왔다. 성금 모금차 올림픽공원 천호대교 남단 광진교전망대 천호역사 등 길거리 공연도 하고 있다. 이날 국악 무용을 선사한 최해리가 씨(52)와 중국 옌볜 출신 황갑송 씨 등은 길거리 공연을 보고 봉사단에 합류했다.
그의 봉사단 활동은 격주도 아니고 매주 토요일, 10~20명 단원 및 수많은 장비를 이끌고 전국을 누비는 거의 ‘중노동’이다. 세무공무원 업무에 지장은 없느냐고 물었다. “토요일 남들이 골프하고 여가를 즐길 시간에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어려운 분에게 잠시나마 힘을 주는 일이라 토요일만 기다려요.”
사비를 털어 장비이송용 탑차와 작은 사무실(현 강동세무서 건너편)을 마련했지만 예산 부족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김 단장의 선행에 그의 전·현직 동료 등이 원군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영준 잠실세무서 재산세과장(52), 각각 강남세무서 조사팀장과 송파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을 끝으로 퇴임한 허승길 세무법인 신화 전무(58), 강태영 이촌세무법인 대표(62) 등이다. 부인과 함께 봉사단 생활을 하고 있는 허 전무는 본인을 “색소폰과 음악, 봉사에 미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잠실세무서 세정협의회 전 회장(현 감사)을 지낸 이봉경 두하 대표(64)는 봉사단 지원이사 격으로 합류했다.
지금은 사라진 국립세무대 2기 출신인 김 단장은 중부지방국세청 부동산투기조사반, 서울지방국세청 재산세계, 성동·송파세무서 등에서 일해왔다. 일선 세무서장도 맡을 경력이지만 봉사단 활동 탓에 진급이 늦었다는 게 일부 단원의 귀띔이다. 김 단장은 “자리에 욕심이 있었으면 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다”며 웃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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