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2㎞, 한 시간 반을 달렸다. 기원전 2세기에 형성된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을 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1864년 라몬 알마라스라는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된 이래 현재까지 어떤 것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미지의 세계다. 태양은 자기 과시라도 하듯 힘껏 뜨겁다.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고 포효하는 듯한 태양의 기세와 도시의 찬란한 유적에 압도된 여행자의 몸과 마음이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태양과 달을 숭배하는 세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가 있는 유적지답게 상인들이 많다. 그들은 가면, 활, 멕시코 전통 인형, 카펫 등을 팔고 있다. 누군가 다가와 작은 석상 두 개를 건넸다. 하나는 달의 정기를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의 정기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여자와 남자를 상징한다는 두 돌을 치켜들고는 서툰 영어를 버무린 열성적인 몸짓으로 설명한다. 아마도 테오티우아칸에 남아 있는 14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위대한 해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를 설명하려는 모양이다. 뒤이어 짧고 굵게 “40달러”라고 외친다.
더위에 지친 여행자는 반응이 없다. 그러자 그는 반쯤 포기한 채로 내 이름을 묻는다. 이름을 말하자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전의를 불태우며 외친다. “네 이름에는 해도 있고 달도 있으니까 꼭 사야 해. 해피 해피 40달러!” 실랑이 끝에 개당 1㎏은 돼 보이는 돌을 35달러와 맞바꿨다.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카메라 가방까지 합쳐 12㎏의 무게를 견디며 고행하듯 그늘 한 점 없는 평지를 걷고 가파른 피라미드들을 오를 판이다. 해발 2300m의 고원에서 느끼는 고산 증세와 타는 듯한 더위에 몽롱해진 정신을 탓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이 든든하다. 모든 것이 추정일 뿐인 고대도시를 비추는 해와 달의 정기를 받은 신비의 돌을 지녔으니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이 ‘해피 해피!’ 할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광활한 대지 위에 있었던 미지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은 기원전 2세기 건설되기 시작해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전성기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언제 어떤 이유로 멸망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14세기 정착지를 찾던 아즈텍인들은 이곳을 발견하고 ‘신들의 도시(테오티우아칸)’라고 불렀다.
에스파냐가 멕시코를 점령하기 전까지 아즈텍인들은 200년간 도시를 신성시했다. 이후 방치된 채 버려진 도시는 폐허가 됐고 19세기 중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도시는 가로폭 40~100m, 세로 길이 5.5㎞로 남북으로 뻗은 ‘죽은 자의 길’을 중심으로 건설됐다. 죽은 자의 길 양옆으로는 작은 피라미드 11개와 수많은 신전과 궁전 등이 늘어서 있고 태양 피라미드는 길 동쪽에, 달의 피라미드는 죽은 자의 길 끝에 있다. 구글맵의 위성사진을 들여다보면 도시 전체가 달의 피라미드를 감싸는 느낌이다. 발굴된 유적이 아직까지 10% 남짓이라 하니 실제 도시의 모습은 어마어마한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양 피라미드의 신비로운 풍경
태양 피라미드 앞에 섰다. 밑변 225m, 높이 65m의 거대한 규모다. 약 40도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박힌 수백개의 계단은 두 팔을 벌린, 얼굴 없는 사람을 닮았다. 만약 피라미드 위로 태양이 걸린다면 완벽한 사람의 모습일 게다. 기원전 150년, 왕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설계였다면 말 그대로 성공적인 연출인 셈이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몸통을 가득 메운 피라미드 위로 붉게 빛나는 태양이 걸려 머리가 되는 순간, 누구라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눌려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태양 피라미드로 오르기 위해선 줄을 서야 한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0분에 100여명만 올려보내기 때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영어로, 누군가는 스페인어로, 또 누군가는 한국어로 “엄마야” “아이고” 등의 탄성을 쉴 틈 없이 내질렀다. 두발로 꼿꼿이 오르기 시작해 중간중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길 몇 번, 결국엔 네 발로 기어 정상에 도달했다.
도시는 달의 피라미드를 경배한다
태양 피라미드에서 내려와 길 끝에 선 달의 피라미드로 향했다. 밑변 120m, 높이 46m의 4층 계단 형식으로 설계됐다.
마야문명에는 대대로 인신공희의 풍습이 있다. 이들의 신화에 따르면 지금까지 4개의 우주가 존재해왔고 현재의 우리는 다섯 번째 우주에 살고 있다. 이전의 우주는 재규어와 바람, 물, 불에 의해 차례로 멸망했고 다섯 번째 우주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의가 불가피하다고 믿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꼭대기에 올랐다. 노력과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고행 같은 등정을 한번에 위로할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풍광이 발아래로 펼쳐졌다.
여행팁
교통편 멕시코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가지다. 직항은 없다. 미국(LA), 일본(도쿄), 캐나다(밴쿠버)를 경유해 멕시코시티 노선으로 입국하는 방법이 있다.
언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영어가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알찬 여행을 원한다면 기본적인 스페인어 몇 가지는 익혀두는 것이 편하다.
화폐 페소를 사용한다. 3월20일 기준으로 1페소(멕시코 MXN)는 80.95원. 환전율은 시내보다 공항에서 더 좋다.
날씨 일교차가 크다. 뜨거운 낮, 서늘한 밤을 대비해 옷을 챙겨야 한다. 멕시코시티는 해발고도 2240m의 고지대다. 개인에 따라 고산증세를 느낄 수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상비약은 한국에서 준비해 가는 것이 좋겠다.
테오티우아칸(멕시코)=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태양과 달을 숭배하는 세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가 있는 유적지답게 상인들이 많다. 그들은 가면, 활, 멕시코 전통 인형, 카펫 등을 팔고 있다. 누군가 다가와 작은 석상 두 개를 건넸다. 하나는 달의 정기를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의 정기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여자와 남자를 상징한다는 두 돌을 치켜들고는 서툰 영어를 버무린 열성적인 몸짓으로 설명한다. 아마도 테오티우아칸에 남아 있는 14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위대한 해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를 설명하려는 모양이다. 뒤이어 짧고 굵게 “40달러”라고 외친다.
더위에 지친 여행자는 반응이 없다. 그러자 그는 반쯤 포기한 채로 내 이름을 묻는다. 이름을 말하자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전의를 불태우며 외친다. “네 이름에는 해도 있고 달도 있으니까 꼭 사야 해. 해피 해피 40달러!” 실랑이 끝에 개당 1㎏은 돼 보이는 돌을 35달러와 맞바꿨다.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카메라 가방까지 합쳐 12㎏의 무게를 견디며 고행하듯 그늘 한 점 없는 평지를 걷고 가파른 피라미드들을 오를 판이다. 해발 2300m의 고원에서 느끼는 고산 증세와 타는 듯한 더위에 몽롱해진 정신을 탓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이 든든하다. 모든 것이 추정일 뿐인 고대도시를 비추는 해와 달의 정기를 받은 신비의 돌을 지녔으니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이 ‘해피 해피!’ 할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광활한 대지 위에 있었던 미지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은 기원전 2세기 건설되기 시작해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전성기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언제 어떤 이유로 멸망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14세기 정착지를 찾던 아즈텍인들은 이곳을 발견하고 ‘신들의 도시(테오티우아칸)’라고 불렀다.
에스파냐가 멕시코를 점령하기 전까지 아즈텍인들은 200년간 도시를 신성시했다. 이후 방치된 채 버려진 도시는 폐허가 됐고 19세기 중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도시는 가로폭 40~100m, 세로 길이 5.5㎞로 남북으로 뻗은 ‘죽은 자의 길’을 중심으로 건설됐다. 죽은 자의 길 양옆으로는 작은 피라미드 11개와 수많은 신전과 궁전 등이 늘어서 있고 태양 피라미드는 길 동쪽에, 달의 피라미드는 죽은 자의 길 끝에 있다. 구글맵의 위성사진을 들여다보면 도시 전체가 달의 피라미드를 감싸는 느낌이다. 발굴된 유적이 아직까지 10% 남짓이라 하니 실제 도시의 모습은 어마어마한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양 피라미드의 신비로운 풍경
태양 피라미드 앞에 섰다. 밑변 225m, 높이 65m의 거대한 규모다. 약 40도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박힌 수백개의 계단은 두 팔을 벌린, 얼굴 없는 사람을 닮았다. 만약 피라미드 위로 태양이 걸린다면 완벽한 사람의 모습일 게다. 기원전 150년, 왕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설계였다면 말 그대로 성공적인 연출인 셈이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몸통을 가득 메운 피라미드 위로 붉게 빛나는 태양이 걸려 머리가 되는 순간, 누구라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눌려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태양 피라미드로 오르기 위해선 줄을 서야 한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0분에 100여명만 올려보내기 때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영어로, 누군가는 스페인어로, 또 누군가는 한국어로 “엄마야” “아이고” 등의 탄성을 쉴 틈 없이 내질렀다. 두발로 꼿꼿이 오르기 시작해 중간중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길 몇 번, 결국엔 네 발로 기어 정상에 도달했다.
도시는 달의 피라미드를 경배한다
태양 피라미드에서 내려와 길 끝에 선 달의 피라미드로 향했다. 밑변 120m, 높이 46m의 4층 계단 형식으로 설계됐다.
마야문명에는 대대로 인신공희의 풍습이 있다. 이들의 신화에 따르면 지금까지 4개의 우주가 존재해왔고 현재의 우리는 다섯 번째 우주에 살고 있다. 이전의 우주는 재규어와 바람, 물, 불에 의해 차례로 멸망했고 다섯 번째 우주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의가 불가피하다고 믿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꼭대기에 올랐다. 노력과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고행 같은 등정을 한번에 위로할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풍광이 발아래로 펼쳐졌다.
여행팁
교통편 멕시코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가지다. 직항은 없다. 미국(LA), 일본(도쿄), 캐나다(밴쿠버)를 경유해 멕시코시티 노선으로 입국하는 방법이 있다.
언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영어가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알찬 여행을 원한다면 기본적인 스페인어 몇 가지는 익혀두는 것이 편하다.
화폐 페소를 사용한다. 3월20일 기준으로 1페소(멕시코 MXN)는 80.95원. 환전율은 시내보다 공항에서 더 좋다.
날씨 일교차가 크다. 뜨거운 낮, 서늘한 밤을 대비해 옷을 챙겨야 한다. 멕시코시티는 해발고도 2240m의 고지대다. 개인에 따라 고산증세를 느낄 수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상비약은 한국에서 준비해 가는 것이 좋겠다.
테오티우아칸(멕시코)=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