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 수가 너무 많아요. 자율 경쟁을 하며 자연스럽게 합종연횡(合從連衡)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이죠. 이제 증권사는 회사별로 '강점'을 찾아 경쟁력을 갖춰야 할 때입니다."
지난달 제31대 한국증권학회장에 취임한 길재욱 한양대 교수(사진)는 "최근 휘청이는 국내 증권시장이 살아나기 위해선 전반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금융투자협회 증권학회 사무실에서 길 교수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애플투자증권이 자진 폐업 승인을 받은 다음 날이었다. 2004년 모아증권중개에 이어 국내 증권사가 스스로 문을 닫는 것은 10년 만의 일이다.
길 교수는 "62개 증권사에서 한 개가 줄어 이제 61개가 됐다"고 말했다. 불황 직격탄을 맞은 증권업계 현장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다는 데 대한 씁쓸함이 표정에 묻어났다.
그는 "앞으로 증권사 축소는 외부 충격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일어날 것" 이라며 "망해 나가는 증권사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금융당국이 증권사에 무더기 인가를 내줘 증권사 수가 늘어났지만 출구는 없었던 셈"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증권시장이 과거 위탁 매매 수수료 수익에만 의존하던 과거 습성에 젖어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증권학회 학자들도 홍콩, 싱가포르, 일본 학자들과 경쟁합니다. 국내 증권사들도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해외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말로만 '금융권의 삼성을 찾자'고 운운해선 안 되고 행동으로 나서야 해요. 특화된 분야에서 증권사 대표 선수들이 나와야죠."
개인투자자들도 주식을 통해 직접투자하는 시대가 지났다고 강조했다. 이젠 펀드 등 간접투자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 최근 불거진 코스닥 시장 분리 논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코스닥시장 제자리 찾기는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코스닥시장이 활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의도했던 선순환 구조가 깨져버린거죠. '작전 세력'의 온상 같은 이미지가 쌓이니 투자자들도 외면하게 되고, 제대로된 기업들도 떠나는 것이죠."
길 교수는 "운영 주체와 시장 참가자들이 제대로 된 원칙과 방법을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코스닥시장 분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가치를 지닌 기업들이 코스닥 시장에 들어와 기관과 투자자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적절한 선순환이 되살아날 것이란 설명이다.
한국증권학회는 재무·금융 분야 학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회원에 1300여명에 달한다. 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AJFS는 국제적인 학술지로 인정받고 있다. 다음 달엔 증권사랑방에서 '금융시장, 활력을 되찾을 것인가'를 주제로 논의할 예정이다.
한경닷컴 이지현 기자 edi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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