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저금리 시대가 저무는 모양이다. 다름 아닌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내년 봄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한다. 경기회복을 전제로 했지만, 테이퍼링 종료 6개월 후라고 금리인상 시점까지 콕 집어 말해 눈길을 끈다. 실언이었든 의도적인 발언이었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년째 지속되는 ‘머니 파티’를 끝낼 채비를 하라는 메시지인 것은 분명하다. 어차피 언젠가는 매듭을 지어야 했던 일이다. 올 게 왔다.
저금리는 축복 아니다
사실 저금리는 결코 축복이 아니다. 금리는 미래에 대한 할인율로 볼 수 있다. 기대치가 낮을수록 금리도 낮아진다. 저금리는 곧 저성장을 뜻한다. 일본에서 보는 그대로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는 경제는 미래가 없다. 당장에도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면 뒤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증시 거품을 경고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도 저금리에 따른 부담이 상당하다. 기준금리가 지난해 5월 이후 10개월째 연 2.5%로 동결되는 동안 단기 부동자금이 불어나 사상 처음 700조원을 넘어선 게 대표적이다. 돈이 넘쳐나도 정작 굴릴 데가 없어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실제 통화 유통속도와 통화승수는 모두 뚝 떨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통화 유통속도는 2007년까지만 해도 0.80을 웃돌았지만 지난해에는 0.70으로 급감했다. 통화승수도 2007년 12월 25.2배였지만 지난해 12월부터 20배 밑으로 떨어져 올 1월 현재 19.7배에 불과하다. 특히 돈이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는 탓에 투자 소비 모두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리·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을 우려하는 소리까지 나온다.
금리를 당장 올려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기업의 투자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금리를 내려 투자가 늘고 고용이 창출될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해야 한다. 문제는 낮은 금리를 10개월째 동결했어도 투자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금리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해법은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요구하는 각종 부담금이나 규제법을 혁파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옳다. 가계부채 문제도 그렇다. 가계부채를 줄인다면서 저금리를 지속하는 모순된 동거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 내정자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담보 대출자 중 소득 상위계층은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밝힌 것은 정책적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되면 부채를 갚도록 하는 방식으로 풀어 가는 게 원칙이다.
출구전략 있나
저금리를 마냥 붙들고 갈 수는 없다. 이미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금융소득에 의존하는 은퇴생활자는 실질금리 하락으로 위협받고, 은행 보험 등 금융회사는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더구나 Fed가 시간표를 제시한 마당이다. Fed 내부에선 현재 제로 수준인 기준금리가 내년 말엔 1%포인트 정도 오를 것이란 구체적인 예상까지 나온다. 한은이 그동안 금리를 올려야 했던 때도 내려야 했던 때도 시기를 놓쳐 금리정책이 궁지에 처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던 터다. 선제적 대응은 못했더라도 사후적 대처는 있어야 한다. 출구전략은 실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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