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설명(IR) 담당자가 통화 중에 '요즘 회사 분위기가 좋다, 실적 잘 나올 것 같다'고 하더군요. 순간 '이 종목은 이제 못 사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미공개정보 위반에 걸리면 안되니까요."
금융당국의 미공개정보이용 위반 조사가 CJ E&M에 이어 게임빌과 NHN엔터 등으로 확산되면서 증권업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혹시라도 불공정 거래로 처벌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지난 12일 자본시장조사단은 CJ E&M의 '어닝 쇼크'를 공시 전에 미리 알린 혐의로 CJ E&M 직원들과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을 검찰에 고발 · 통보 조치했다. 증권사들도 '기관 경고'의 중징계를 받았다.
CJ E&M뿐만 아니다. 금융당국은 게임빌과 NHN엔터에 대해서도 유사한 미공개 정보 이용 위반 사례를 포착해 조사에 들어갔다. 또 앞으로 차별적 정보제공 등 비정상적인 정보유통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유사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지속하겠다고 경고했다.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 상장사 IR 담당 직원들은 예상보다 높은 징계 수위에 몸을 사리고 있다.
한 펀드매니저는 "CJ E&M 조사 당시 펀드매니저들의 회사 통화 기록과 메신저 내역도 싹 조사해갔다"며 "언제 또 그런 일이 생길지 몰라 기업 담당자와 얘기할 때도 실적에 대한 내용은 주고받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외부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애널리스트들에게 회사 유선전화만을 이용하라고 지시하거나 외부로 노출되는 코멘트를 금지하도록 한 증권사도 있다. 지금까진 증권가 메신저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실적 자료들이 돌기도 했지만 요즘 싹 사라졌다는 후문이다.
증권업계에선 금융당국의 취지를 이해하지만, 미공개 정보의 기준과 처벌 대상 등이 애매모호하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제일 먼저 미공개 정보를 전달한 1차 정보제공자만 처벌하고, 2,3차 제공자는 처벌하지 않는 규정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당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당초 공정 공시 제도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 정보 취득 후 주식이 오르거나 떨어질 것을 미리 알고 주식 매매에 나설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라면 공시 외 행위로 알리는 것은 불법이다.
자본시장조사단 관계자는 "신규 사업이나 게약 체결 같은 공정 공시의 대상이 되는 정보는 공시를 통해 알려야지 은밀하게 일부 대상자에게만 알리면 안된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는 시장과 동일한 정보를 갖고 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는 사람이지, 기업에서 남들보다 빨리 정보를 받아 옮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장 탐방을 간다는 것은 회사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가는 것이지 구체적인 수치를 들으러 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동안 IR 담당자와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등 일명 '기관'들 사이에서 관행적으로 그들만의 정보 거래가 있었다. 막대한 자금을 가진 기관들이 이런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 팔며 주가를 뒤흔들 때, 피해는 아무것도 모르는 개인들이 받았다.
기관과 외국인이 큰 움직임을 보이면 개인 투자자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부터 든다. CJ E&M 사태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요즘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에 관심이 없다. 거래대금은 연일 밑바닥을 치고 있고 주식시장은 활기를 잃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개인들은 '폭탄처리반'일 뿐이며, 주식시장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선입견을 깨려는 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주식시장은 기업에 대한 신뢰를 기본으로 자본이 선순환하는 페어플레이의 장이 돼야 하다. 소수의 '꾼'들만 살아남는 투기의 장이 돼선 안될 것이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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