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 심화·사회적 약자의 울분
폭발물 제조 인터넷 확산, 사제폭발물 사고 6건 발생
2014년 아시안게임 등 열려 외국 테러단체 표적 경계를
테러대응 '컨트롤타워' 시급…자생적 테러 예방 노력 필요
[ 홍선표 기자 ]
지난 17일 오후 2시55분 분당선 강남구청역.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반(EOD) 소속 전제환 경위는 출동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승강장으로 내달렸다. 압구정역 방향 4-3 승강장에는 검은색 여행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50분 전 ‘폭발물로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은 문제의 가방이었다.
데리고 간 탐지견 두 마리는 가방 앞에서 특이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엑스레이 촬영에서 폭발물의 뇌관으로 추정되는 철사 형태의 물체가 보였다. 순간 현장엔 긴장이 높아졌다. 현장을 통제하던 경찰·군·소방 합동정보조사팀은 뇌관 하나와 전자식 센서 회로로 이뤄진 폭발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물사출 분쇄기(일명 물포)를 사용하기로 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 역을 지나는 열차 운행도 중단시켰다.
오후 4시20분. 필수 요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역사 밖으로 대피한 가운데 무게 40㎏의 방폭복을 입은 EOD 소속 황태선 경사가 물포 스위치를 눌렀다. 두 방의 물포가 잇따라 가방을 때렸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EOD 요원들이 조심스레 연 가방에는 남성용 점퍼와 코트, 바지 등 옷가지 10여벌이 들어 있었다. 엑스레이 촬영에서 뇌관으로 보였던 물체는 철제 옷걸이와 라이터였다.
한때 ‘의심 물체가 폭발물로 확인됐다’는 설까지 나돌면서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강남구청역 사건’은 유모씨(65)가 깜빡하고 두고 간 가방을 폭발물로 오인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최근 폭발물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모두 오인 소동으로 끝나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미국 보스턴마라톤 사제 폭발물 테러와 같은 사건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2009년 이후에만 사제 폭발물을 이용한 사고가 6건이나 발생했다.
특히 올해는 인천 아시안게임과 한·아세안 정상회담이 열린다. 외국 테러단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와 일선 경찰은 “테러 예방과 대응 업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는 한국은 실제로 테러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불평등 확대 등에 따른 ‘외로운 늑대형 테러’가 국내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폭발물 테러 조짐이 나타나면…
폭발물 처리는 그 종류와 설치 장소에 따라 담당하는 기관이 다르다.
군용 폭발물은 국방부 폭발물 처리반이 전담하고, 사제 폭발물과 민수용 폭약은 경찰이 처리하는 게 원칙이다. 해상 폭발물 테러는 해양경찰청이, 공항 내부에 설치된 폭발물 대응은 국토교통부가 맡는다. 강남구청역 사건의 경우 강남경찰서가 서울지방경찰청과 군부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폭발물 설치 의심신고를 받으면 폭발물 탐지견을 가장 먼저 투입한다. 탐지견을 이용해 1차 조사를 벌인 뒤 엑스레이 투시기로 의심 물체에 뇌관이나 전자 센서, 건전지 등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어 경찰과 군, 소방당국 등 현장에 출동한 유관기관 요원들이 엑스레이 사진을 판독해 폭발물 여부를 판단한다.
해당 물체가 폭발물로 최종 판단이 나면 방폭복을 갖춰 입은 EOD 요원이 나선다. EOD 요원이 의심 물체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경우에는 엑스레이 촬영장비, 기계손, 물포 등을 갖춘 폭발물 로봇을 투입하기도 한다.
이 로봇은 미국 육군 폭발물 처리반의 활약을 다룬 영화 ‘허트 로커’에 나온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국내에는 7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특공대 관계자는 “현장에서 의심 물체를 옮겨도 폭발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특수제작한 방폭 트레일러에 싣고 넓은 공터로 이동해 폭발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테러 안전국? ‘외로운 늑대’ 경계해야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 1983년 아웅산 테러,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이후 한국은 지금까지 대형 테러를 겪지 않았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사제 폭발물 제조법이 확산되면서 평범한 개인이 테러리스트로 돌변하는 사건이 국내에서 잇따랐다.
2011년 5월에는 주가 하락으로 인한 시세차익을 노린 한 개인이 부탄가스와 폭죽 화약, 타이머 등을 이용해 만든 사제 폭발물을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내부에서 폭발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대(對) 테러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문화 국가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국가 구성원에 의한 자생적 테러를 예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이주민과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극우 민족주의자 아네르스 브레이비크의 테러로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1년 노르웨이 오슬로 사건과 러시아 체첸 출신 이민자 형제가 저지른 보스턴마라톤 대회 테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은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출신, 북한 이탈 주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심화되면 ‘외로운 늑대형 테러’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내부 구성원이 저지르는 테러는 사전에 첩보를 입수해 예방하기 어렵고 피해도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뿔뿔이 흩어진 테러 대응 기능
인터넷을 통해 독학으로 폭발물 제조 기법을 배우고 홀로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외로운 늑대형 테러’ 등에 대응하려면 대응 업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정부 내 테러 예방 및 감시 업무는 1982년 제정된 ‘국가 대테러 활동지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법규가 아닌 대통령 훈령만으로 테러에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처럼 테러리스트의 국내 입국 금지는 출입국관리법,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무기 단속은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통합 방위작전은 통합방위법에 따라 이뤄지는 등 관련 법이 나뉘어 있으면 부처 간 유기적인 협력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최근 폭발물 신고가 잇따르자 현장에서도 각종 훈련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인터넷을 통해 폭발물을 제조하더라도 강력하게 처벌하기 쉽지 않은 현행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폭발물 제조 인터넷 확산, 사제폭발물 사고 6건 발생
2014년 아시안게임 등 열려 외국 테러단체 표적 경계를
테러대응 '컨트롤타워' 시급…자생적 테러 예방 노력 필요
[ 홍선표 기자 ]
지난 17일 오후 2시55분 분당선 강남구청역.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반(EOD) 소속 전제환 경위는 출동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승강장으로 내달렸다. 압구정역 방향 4-3 승강장에는 검은색 여행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50분 전 ‘폭발물로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은 문제의 가방이었다.
데리고 간 탐지견 두 마리는 가방 앞에서 특이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엑스레이 촬영에서 폭발물의 뇌관으로 추정되는 철사 형태의 물체가 보였다. 순간 현장엔 긴장이 높아졌다. 현장을 통제하던 경찰·군·소방 합동정보조사팀은 뇌관 하나와 전자식 센서 회로로 이뤄진 폭발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물사출 분쇄기(일명 물포)를 사용하기로 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 역을 지나는 열차 운행도 중단시켰다.
오후 4시20분. 필수 요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역사 밖으로 대피한 가운데 무게 40㎏의 방폭복을 입은 EOD 소속 황태선 경사가 물포 스위치를 눌렀다. 두 방의 물포가 잇따라 가방을 때렸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EOD 요원들이 조심스레 연 가방에는 남성용 점퍼와 코트, 바지 등 옷가지 10여벌이 들어 있었다. 엑스레이 촬영에서 뇌관으로 보였던 물체는 철제 옷걸이와 라이터였다.
한때 ‘의심 물체가 폭발물로 확인됐다’는 설까지 나돌면서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강남구청역 사건’은 유모씨(65)가 깜빡하고 두고 간 가방을 폭발물로 오인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최근 폭발물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모두 오인 소동으로 끝나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미국 보스턴마라톤 사제 폭발물 테러와 같은 사건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2009년 이후에만 사제 폭발물을 이용한 사고가 6건이나 발생했다.
특히 올해는 인천 아시안게임과 한·아세안 정상회담이 열린다. 외국 테러단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와 일선 경찰은 “테러 예방과 대응 업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가 없는 한국은 실제로 테러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불평등 확대 등에 따른 ‘외로운 늑대형 테러’가 국내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폭발물 테러 조짐이 나타나면…
폭발물 처리는 그 종류와 설치 장소에 따라 담당하는 기관이 다르다.
군용 폭발물은 국방부 폭발물 처리반이 전담하고, 사제 폭발물과 민수용 폭약은 경찰이 처리하는 게 원칙이다. 해상 폭발물 테러는 해양경찰청이, 공항 내부에 설치된 폭발물 대응은 국토교통부가 맡는다. 강남구청역 사건의 경우 강남경찰서가 서울지방경찰청과 군부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폭발물 설치 의심신고를 받으면 폭발물 탐지견을 가장 먼저 투입한다. 탐지견을 이용해 1차 조사를 벌인 뒤 엑스레이 투시기로 의심 물체에 뇌관이나 전자 센서, 건전지 등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어 경찰과 군, 소방당국 등 현장에 출동한 유관기관 요원들이 엑스레이 사진을 판독해 폭발물 여부를 판단한다.
해당 물체가 폭발물로 최종 판단이 나면 방폭복을 갖춰 입은 EOD 요원이 나선다. EOD 요원이 의심 물체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경우에는 엑스레이 촬영장비, 기계손, 물포 등을 갖춘 폭발물 로봇을 투입하기도 한다.
이 로봇은 미국 육군 폭발물 처리반의 활약을 다룬 영화 ‘허트 로커’에 나온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국내에는 7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특공대 관계자는 “현장에서 의심 물체를 옮겨도 폭발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특수제작한 방폭 트레일러에 싣고 넓은 공터로 이동해 폭발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테러 안전국? ‘외로운 늑대’ 경계해야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 1983년 아웅산 테러,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이후 한국은 지금까지 대형 테러를 겪지 않았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테러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사제 폭발물 제조법이 확산되면서 평범한 개인이 테러리스트로 돌변하는 사건이 국내에서 잇따랐다.
2011년 5월에는 주가 하락으로 인한 시세차익을 노린 한 개인이 부탄가스와 폭죽 화약, 타이머 등을 이용해 만든 사제 폭발물을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내부에서 폭발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대(對) 테러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문화 국가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국가 구성원에 의한 자생적 테러를 예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이주민과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극우 민족주의자 아네르스 브레이비크의 테러로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1년 노르웨이 오슬로 사건과 러시아 체첸 출신 이민자 형제가 저지른 보스턴마라톤 대회 테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은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출신, 북한 이탈 주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심화되면 ‘외로운 늑대형 테러’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내부 구성원이 저지르는 테러는 사전에 첩보를 입수해 예방하기 어렵고 피해도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뿔뿔이 흩어진 테러 대응 기능
인터넷을 통해 독학으로 폭발물 제조 기법을 배우고 홀로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외로운 늑대형 테러’ 등에 대응하려면 대응 업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정부 내 테러 예방 및 감시 업무는 1982년 제정된 ‘국가 대테러 활동지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법규가 아닌 대통령 훈령만으로 테러에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처럼 테러리스트의 국내 입국 금지는 출입국관리법,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무기 단속은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통합 방위작전은 통합방위법에 따라 이뤄지는 등 관련 법이 나뉘어 있으면 부처 간 유기적인 협력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최근 폭발물 신고가 잇따르자 현장에서도 각종 훈련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인터넷을 통해 폭발물을 제조하더라도 강력하게 처벌하기 쉽지 않은 현행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