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339위의 반란…마스터스 출전권 확보
[ 한은구 기자 ] 한때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시도했던 스티븐 보디치(31·호주)가 미국 PGA투어 발레로 텍사스오픈(총상금 620만달러)에서 감격의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세계랭킹 339위인 보디치는 31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TPC 오크스 코스(파72·7435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오버파 76타를 기록,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로 2위 윌 매켄지와 대니얼 서머헤이스(이상 미국)를 1타차로 제쳤다.
○알코올 중독…자살 시도
보디치는 2001년 호주 아마추어 최고 선수로 꼽힐 정도로 유망주였다. 2005년 미국 PGA투어 2부투어에 진출해 우승 1회, 준우승 2회의 빼어난 성적을 내며 상금랭킹 4위에 올라 2006년도 PGA투어 풀시드를 획득했다.
하지만 그는 2005년부터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오후 1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마시다 2시간 뒤인 7시에 티오프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2006년에는 이유 없이 차를 몰고 3~4시간 도로를 질주하는가 하면 가족이나 친구들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1부투어의 실패는 불보듯 뻔했다. 22개 대회에 나갔으나 보디치는 단 두 차례 커트를 통과했을 뿐 네 차례의 실격과 세 차례의 기권을 포함, 20개 대회에서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커트를 통과한 2개 대회도 76, 78위로 거의 꼴찌였다. 60대 타수보다 80대 타수를 친 라운드가 더 많았고 그해 그가 번 돈은 1만1160달러였다. 이번 대회 우승상금인 111만6000달러의 100분의 1에 불과했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위스키 한 병을 마신 뒤 댈러스에서 살던 공동주택의 수영장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물에 떠 있던 그를 여자친구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우울증 치료하며 끊임없이 도전
보디치는 2007년부터 본격적인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와 함께 2부투어 대회 출전도 병행했다. 2007년 23개 대회에서 9차례 커트를 통과했으나 상금랭킹 99위에 머물렀다. 2008년에는 16차례 출전해 2차례 커트 통과에 그쳤다. 시즌을 마치고 그가 손에 쥔 돈은 4000달러가 채 안 됐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20개 대회에서 7차례 커트를 통과하며 2차례 ‘톱10’에 들어 재기의 조짐을 보였다. 급기야 2010년에는 우승까지 하면서 상금랭킹 17위에 올라 2011년도 1부투어 진입에 성공했다.
1부투어에 올라오긴 했으나 만만치 않았다. 2011년 상금랭킹 132위에 그쳐 125위까지 주는 풀시드 획득에 실패했다. 보디치는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38위를 기록, 간신히 시드를 유지했으나 2012년 상금랭킹 185위에 그쳐 다시 퀄리파잉스쿨로 내려갔다. Q스쿨에서 공동 10위로 다시 풀시드를 획득한 그는 지난해 상금랭킹 118위를 기록, 퀄리파잉스쿨을 가지 않아도 됐다.
세계 랭킹 339위였던 보디치는 이번 우승으로 2년간 전 경기 출전권을 보장받았고 생애 첫 마스터스 출전권도 따냈다. 경기가 끝난 뒤 존 센든, 애런 배들리 등 호주 선수들의 축하를 받은 보디치는 “달 위에 있는 기분이다. 내가 꿈꿔 왔던 일이 일어났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마지막 날 최악의 스코어로 우승
보디치는 이날 4오버파로 부진했으나 경쟁자 역시 줄줄이 오버파를 기록하는 바람에 우승컵을 안을 수 있었다. 강풍 속에서 치러진 마지막날 선수들의 평균 스코어는 평균 73.8타였다. 마지막 날 76타는 2004년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비제이 싱(피지) 이후 10년 만에 나온 최악의 스코어다. 마지막 날 우승자의 최악 스코어는 1983년 켐퍼오픈에서 프레드 커플스(미국)가 작성한 5오버파 77타다.
보디치는 요즘 호주의 정신질환 비영리 치료단체인 ‘비욘드블루’에서 활동하며 자신처럼 우울증을 겪은 환자들을 돕고 있다. 한편 재미교포 케빈 나(31)는 합계 3언더파 공동 11위, 노승열(23·나이키골프)은 합계 1언더파 공동 16위로 대회를 마쳤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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