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상속 재산의 50%를 생존 배우자에게 우선 배정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선취분’ 제도가 대폭 개선된다. 부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재산만 선취분 대상으로 인정하고 명백한 피상속인(재산을 남기고 죽은 사람) 재산에 대해서는 선취분을 청구하지 못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가업 승계가 어려워지는 등 기존 안의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편의 소득이 더 높거나 가업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 여건상 아내가 받는 선취분이 당초 안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민법 상속편을 개정 중인 법무부는 ‘재산 형성 경위’와 ‘부부 재산 관계’를 고려해 선취분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을 개정안에 넣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안이 확정되면 공동 재산에만 선취분을 인정하는 효과가 있다. 결혼생활을 하던 중에 취득했어도 사망한 배우자의 소유가 명백한 재산에 대해서는 그 사람 고유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부부별산제에 따라 생존 배우자가 선취분을 청구할 수 없다. 기존 안은 상속재산 전체를 선취분 청구 대상으로 했다.
앞서 민간 전문가 위주로 법무부 산하에 꾸려진 민법 상속편 개정 특별분과위원회는 ‘생존 배우자에게 상속 재산의 50%를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를 유언이나 유류분에 따라 상속인끼리 나눈다’는 내용으로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1월 법무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생존 배우자에게 가는 상속재산이 지나치게 많아지거나 가업승계가 불안해지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법무부가 보완책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분과위는 생존 배우자의 몫이 지나치게 적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배우자에 대한 부양 필요성’도 고려 사유에 넣기로 했다. 정확한 입법예고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분과위가 법무부에 제출한 종래 안에도 선취분 감액 사유가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혼인 기간, 별거 기간 및 사유, 그 밖의 사정을 참작해 감액할 액수를 정한다”고만 돼 있어 한쪽 명의의 재산도 선취분 청구 대상에 포함됐다. 분과위는 법안을 법무부에 제출하면서 “피상속인이 혼인 중에 형성한 재산의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생존 배우자의 협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서 실질적인 공유”라는 의견을 달았다.
선취분에 부부별산제가 적용되면 당초 분과위의 안에 대해 제기됐던 “가업승계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남편이 회사를 운영하고 아내는 가사만 돌보다가 남편이 사망한 경우 남편 소유의 회사 지분은 선취분 청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러나 아내도 가업에 기여했다면 회사 지분도 선취분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법조계와 여성계 등에서 반발해 최종안이 확정되기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문송희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아내가 가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남편 뒷바라지를 하기 때문에 회사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부부별산제를 선취분에 적용하는 것은 남성 위주의 재산 분배”라고 반박했다.
■ 선취분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했을 때 생존 배우자에게 우선 배정하는 상속 재산. 유럽 일부 국가에서 선취분 제도가 시행 중이며 국내에서도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이다.
■ 부부별산제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재산이나 결혼한 뒤에도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는 그 사람 고유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제도.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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