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털어 교육발전 기여" vs "친일 의혹"…한국외대 '설립자 동상' 뜨거운 공방

입력 2014-04-02 20:51   수정 2014-04-0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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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행적보다 공이 더 커"
외국어 고등교육기관 첫 설립…근대 기업발전 공로 인정해야

"친일인사 동상 안된다"
일제 당시 군납 등 지원 경력…일부 동문·학생들 강력 반발



[ 홍선표 기자 ] 학교 설립자의 동상 설치 문제로 한국외국어대가 시끄럽다. 오는 20일 개교 60주년을 맞는 한국외대가 학교 설립자 동원(東園) 김흥배 박사(사진)의 동상을 본관 앞에 세우기로 하자 일부 동문과 학생들이 ‘친일파의 동상을 학교에 둘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김 박사는 자수성가한 기업가다. 1914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해 여러 기업체를 일궜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화재보험과 동일방직공업, 한국신탁을 창업해 한국의 근대 기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4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 최초의 외국어 고등교육기관인 한국외대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엔 영어과, 불어과, 중국어과, 독일어과, 러시아어과 등 5개 외국어 학과로 출범했다. 이듬해 서반아어과에 이어 1961년 일본어과, 1966년에는 포르투갈어과, 태국어학과를 신설하면서 13개 학과로 늘어났다. “국제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은 당시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선각자적 결정이었다. 이런 공로로 1983년 국민훈장 중 가장 등급이 높은 무궁화장을 받았다.

이런 김 박사를 기리기 위해 한국외대 재단인 동원육영회는 개교 60주년에 맞춰 1억여원을 들여 제작한 동상을 18일 서울캠퍼스 본관 앞에 세우기로 하고 총동문회를 통해 동문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300여명의 동문으로 구성된 ‘애국외대 청년동문회’를 중심으로 김 박사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 박사가 1938년 서울 아현동에 의류제조회사인 노다피복공장을 세워 일본군에 군복류를 납품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일제의 전쟁 지원단체인 국민총력 경성부연맹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런 행적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는 2008년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며 김 박사를 ‘수록 예정자 명단’에 포함했다. 당시에는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최종 명단에서는 빠졌으나 최근 몇 년 사이 그의 친일 행적이 더 드러났다는 게 동상 제막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다.

동상에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재단 측은 동상 제막을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남주 재단 이사장은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사재를 털어 한국 최초의 외국어대를 설립한 공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2011년 박술음 전 학장(총장)의 동상을 캠퍼스에 세울 때부터 함께 논의된 사업”이라고 말했다. 일제시대에 기업을 운영하면서 총독부가 만든 여러 관변단체에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그런 행적을 ‘적극적 친일’의 증거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의 동상이 세워진 학교는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알려진 곳만 20여곳이다. 지난해 11월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각시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학교 설립자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다른 인물의 동상으로 바꾸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같은해 5월에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김활란 초대 총장의 동상을 철거하라는 쪽지를 붙여 3m 높이의 동상이 쪽지로 뒤덮이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친일 의혹을 받는 인물의 동상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 다수가 이런저런 형태로 친일 행위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배경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대학원 교수는 “실력양성론을 내세우며 고려대를 세워 인재를 양성한 인촌만 해도 무조건 친일파라 비판하기는 힘들다”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에 대한 존경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력했던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다양한 시각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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