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정주영 회장 '거북선 일화'
금융포럼 연설서 풀어내
[ 장창민 기자 ] “옛 500원권 지폐 2장만 구해 오게.” 지난달 말 영국 런던 출장 준비를 앞두고 있던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비서실에 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어리둥절한 지시에 난감해하던 비서실 직원들은 고민 끝에 골동품 가게가 몰려 있는 서울 인사동에서 어렵사리 500원짜리 구권 화폐 두 장을 살 수 있었다.
지폐를 건네받은 신 위원장은 앞면과 뒷면이 보이게 두 장을 나란히 액자에 넣은 뒤 여행 가방에 담고 31일 출장길에 올랐다. 그가 찾은 행사는 1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한·영 금융협력 포럼’. 한국 측에선 신 위원장을 비롯해 정부와 금융기관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영국에선 런던 금융가 시티를 대표하는 피오나 울프 시장(로드메이어)과 중앙은행 금융감독청 등의 핵심 인사들이 모였다.
연설 차례가 돌아오자 신 위원장은 준비해간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고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일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돈도 기술도 없었지만 조선소를 짓겠다는 일념 하나로 1970년 ‘A&P 애플도어’라는 금융사의 찰스 브룩 롱바텀 회장을 만나 담판했다는 바로 그 스토리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설득해 극적으로 유조선 건조자금을 지원받았다. 신 위원장은 “이 이야기는 두 나라 간의 오랜 신뢰를 상징한다”며 “금융 분야도 협력의 기틀을 다져 나갈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500원권을 울프 시장에게 선물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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