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고부가 해양플랜트 수주 '급감'
물량 기준으론 이미 중국에 추월당해
[ 이상은 기자 ]
지난해까지 회복 기미가 완연했던 조선 경기가 올 들어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황 속에서도 한국 조선사들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드릴십을 올 들어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하고 있다.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 등 전 세계 조선 시장의 70~80%를 차지하는 상선에서는 이미 중국에 상당 부분 시장을 내줬다. 드릴십 등 해양플랜트 시장까지 빼앗기면 전 세계 1위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조선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수주량은 물론 수주 금액까지 중국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작년 하반기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여온 조선 관련 기업 주가가 올들어 하락세를 타고 있다.
◆‘빅3’ 1분기 수주 ‘빨간불’
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올 1분기 수주 금액은 17억4000만달러로 상선 15척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분기에 비해 36%가량 감소한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상선 43척, 해상플랜트 11척, 특수선 3척 등 총 136억달러를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같은 기간 컨테이너선 5척과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1척 등 20억5000만달러어치의 일감을 따냈다.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지난달에는 수주를 전혀 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은 컨테이너선 15척, 탱커 16척, 가스선(LNG·LPG) 22척 등 56척과 부유식 원유·가스생산설비(FPU) 1기를 따냈다. 55억달러 규모로 작년(54억달러)과 비슷하다. 그러나 월별로 보면 1월 32억달러, 2월 17억달러, 3월 6억달러 등 감소 추세가 뚜렷했다. 경기 회복과 함께 수주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빗나간 셈이다.
◆효자 드릴십 수주 ‘제로’
특히 우려되는 것은 한국 조선사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드릴십 수주가 지난 1분기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이다. 드릴십은 이동이 가능한 시추설비로 수익성이 가장 높은 해양플랜트로 꼽을 수 있다.
미국 트랜스오션은 지난 2월 약 5억4000만달러어치의 드릴십 2척을 싱가포르 주롱조선사에 발주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싱가포르도 시추설비를 만들긴 하지만 이번에 따간 것은 그동안 한국 조선사들만 만들던 대형 드릴십”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사들이 드릴십 시장 잠식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조선사들도 2012년부터 기술력을 키우면서 대륙붕 시추시설인 ‘잭업리그’ 등 해양플랜트 수주를 늘리고 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조선사들이 아직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나 드릴십 시장에서는 한발 앞서 있지만 안심할 수 없다”며 “중국 정부와 업체들이 중국 조선소에 물량을 몰아주고 있어 큰 부담”이라고 강조했다.
◆상선 수주액도 중국에 추월 우려
국내 조선업은 이미 물량 기준으로는 2012년 이후 중국에 1등 자리를 빼앗겼다. 국제 해운·조선 시황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에도 부가가치 환산톤수(CGT) 기준으로 중국 조선사들의 수주량(429만CGT)은 한국(403만CGT)보다 많았다.
특히 상선 시장에서는 저가 수주를 앞세운 중국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부가가치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가 늘면 조만간 금액으로도 한국을 제칠 가능성이 높다.
조규열 수출입은행 조선해양금융부장은 “국내 조선사 가운데 빅3는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에 주력하면서도 상선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면 안 된다”며 “조선 시장의 향방은 결국 상선이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홍성인 연구위원은 “일본의 나무라·오시마 등 중형 조선소들처럼 한국도 고부가 틈새 상선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미포조선의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처럼 최고 경쟁력을 갖춘 품목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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