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왕국 폐단은 잘못된 법사상 탓
경제는 자생적 질서란 점 명심하고
法이라며 찍어내는 규제 제거해야
법령에 기초한 규제 건수가 1만5000건에 육박한다는 게 국무조정실의 최근 통계다. 시행세칙, 창구지도 등 형체는 없지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그림자 규제’까지 합치면 그 수는 셀 수조차 없다. ‘규제공화국’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규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해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며, 나라 경제를 쇠퇴의 길로 이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말하면서 연일 규제혁파를 외치는 이유도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절실한 걱정 때문이다.
규제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왜 생겨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철의 삼각(Iron Triangle)연대’가 그 이유라는 게 일반적 인식인 듯하다. 규제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익집단, 정치인, 관료 간에 강철처럼 단단하게 형성되는 정치적 이해관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규제 현상을 ‘이해관계’의 의미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 하이에크가 지적했듯이 장기적으로 사회를 변동시키는 근본요인은 인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의 역할을 하는 사상(이념)이란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념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규제의 늪에 빠진 것도 잘못된 법사상의 산물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첫째, 법을 인간의지의 의도적 명령이라고 믿는 법실증주의 사상이다. 법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이 사상에 따라 집단목표를 위해 기업, 개인의 경제활동을 조종하고 지시·명령하는 내용의 규제를 만든다. 그래서 규제는 늘 차별적이다. 지역·계층·산업의 특수이익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수도권·골목상권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등 모든 규제는 그런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규제는 ‘법’이라는 탈을 쓰고 개인과 기업을 정치목적에 예속시켜 그들의 자유를 치명적으로 제약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규제는 ‘법’이 아니다. 강제, 사기, 기만, 계약 위반 등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금지해 사유재산, 자유를 보호하는 게 정의요 진정한 법이다. 법은 집단목표와 전적으로 독립적이다. 그런 법이야말로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대우해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충실한 ‘자유의 법’이다. 이런 법으로 구성된 게 시장경제의 기반이 되는 사법(私法)이고 이 테두리 내에서 개인과 기업은 자유로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광범위한 규제를 야기한 두 번째 원인은 시장경제는 정부의 계획과 규제를 통해서만이 경제적 번영이 가능하다는 ‘조직’ 사상이다. 그러나 이는 시장경제는 스스로 질서가 형성돼 지속적 번영이 가능한 ‘자생적 질서’라는 점을 알지 못하는 얘기다. 경제에 대한 계획과 규제는 지식의 한계 때문에 성공할 수도 없고 오히려 빈곤, 실업의 위기를 초래할 뿐이라는 건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처절한 실패, 2008년 금융위기 등 역사적 사건들이 입증한다.
법 개념을 왜곡해 규제를 만들어낸 세 번째 장본인은 법학계를 지배한 공법사상이다. 정부조직처럼 집단목적에 좌우되게 마련인 공법적 사유에 젖은 나머지 공법과 사법의 구분이 흐려진 채 사법이 유린당하고 있다. 이런 사고를 적극 지원한 게 규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케인스주의와 후생경제학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규제의 늪을 만든 마지막 네 번째는 민주적 법사상이다. 이는 법의 내용 대신 그 원천을 중시하는 사상인데 국회를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보고 구성원 다수가 결정한 것이라면 대중영합·차별·특혜입법도 법이라고 여긴다. 이런 민주사상은 헌법을 통해 국회의 입법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헌법주의’를 무력화시켰다. 그 결과 국회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규제를 법의 이름을 달고 마구 찍어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규제의 기초가 되는 잘못된 법사상을 극복하고 자유의 법, 자생적 질서, 헌법주의를 골자로 하는 자유주의 법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 교수 kwu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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