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채권혼합형은 0.73%
배당소득세도 일반은 15.4%
연금은 퇴직시점까지 과세 미뤄
벤처기업 A사는 2007년 말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DC형 퇴직연금제도는 매년 직장 근로자의 퇴직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사 밖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적립하고, 직장 근로자는 퇴직연금 가입자로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적립금을 직접 운용하는 제도다.
A사가 퇴직연금을 도입할 당시 대부분의 가입자들이 적립금 운용 상품으로 은행 예금이나 증권사의 원리금보장 주가연계증권(ELS)을 선택했다. 그때 A사의 담당 B부장은 적립금 전체를 채권혼합형 펀드에 넣었다. 이듬해 세계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금융시장에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극도로 팽배해졌고 퇴직연금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운용상품으로 펀드를 선택했던 기업과 근로자의 상당수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갈아타는 사례가 늘어났다.
하지만 B부장은 그 해에 새로 납입된 적립금도 모두 채권혼합형 펀드에 투자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이 같은 펀드 운용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2012년 말 A사에 가입자 교육을 갔던 필자는 교육 중에 B부장을 소개했다. 4년간 A사의 퇴직연금운용 누적수익률이 60%를 넘었다는 말과 함께. 그때 원리금보장상품을 선택한 이들에게 나눠 준 운용현황 보고서에는 누적수익률이 10%대 중후반으로 적혀 있었다.
퇴직연금 펀드, 이런 점이 다르다
DC형 또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가입한 직장인이 원리금 보장 상품이 아닌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려면 주식 직접 투자는 허용되지 않는다.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퇴직연금 펀드와 일반 펀드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퇴직연금 펀드는 확정급여형(DB)을 도입한 기업이나 DC, IRP 가입자에 한해 투자가 가능한 퇴직연금 전용 간접투자상품이다.
퇴직연금펀드가 일반 펀드들과 운용상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우선 일반 펀드에 비해 보수가 낮아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시중 금융회사에서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일반 채권혼합형 펀드의 평균 총보수가 연 1.11%인데 반해, 퇴직연금 채권혼합형 펀드의 평균 총보수는 연 0.73%로 이보다 낮다. 절세 효과도 더 크다. 일반 펀드에 투자할 때에는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15.4%의 세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퇴직연금 펀드는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가 퇴직 시점까지 미뤄진다. 세율도 퇴직소득세율이나 연금소득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일반 펀드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퇴직연금펀드 대부분이 모자(母子)형 구조로 설정돼 있다. 모자형 구조는 여러 개의 자펀드에서 자금을 모아 모펀드에서 통합 운용되는 구조로 실제 운용되는 펀드와 내가 가입한 펀드가 다르다. 따라서 내가 가입한 펀드의 적립금이 적은 소규모라 해도, 모펀드의 설정액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면 실제 운용상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일반 펀드와는 주식 편입비중이 다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채권혼합형 펀드는 약관상 주식 편입비율이 최고 50% 미만인 펀드를 의미한다. 그러나 퇴직연금 채권혼합형 펀드의 경우 적립금 운용 규제로 주식을 편입할 수 있는 최대 한도가 40%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펀드평가사에서 제공하고 있는 채권혼합형 펀드 정보로는 퇴직연금 채권혼합형 펀드와의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울 수 있다.
퇴직연금펀드 투자는 일반 펀드에 비해 투자기간이 초장기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퇴직연금펀드의 환매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퇴직연금의 중도해지 자체가 제한돼 있어 오랜 기간 운용되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가입자는 보다 긴 안목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다니던 회사에서 이직이나 전직을 위해 퇴직할 경우 반드시 운용 중인 펀드를 해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퇴직연금제도에는 ‘통산’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 퇴직할 때 기존에 운용하고 있던 펀드를 IRP로 현물이전할 수 있다. 따라서 퇴직을 이유로 자산운용 포트폴리오를 현금화했다가 다시 상품을 매입하는 번거로움 없이 원하는 시기까지 끊어지지 않고 운용이 가능하다.
꼼꼼히 들여다보는 습관 가져야
퇴직연금은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기에 접어든 후에도 IRP로 이전해 계속 운용할 수 있는 ‘종신운용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 기간에는 낮은 보수와 과세 이연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다만 장기투자라고 해서 몇 년이고 방치해 두는 것은 금물이다. 가입자 중에는 노후자산으로 사용될 퇴직연금 펀드의 사후관리에 의외로 소홀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본인이 어떤 펀드에 가입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따라서 퇴직연금 펀드를 운용할 때 몇 가지 유의할 점을 마음 속에 새겨두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먼저 특별히 펀드를 교체하지 않더라도 선택한 펀드가 잘 운용되고 있는지 반드시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보유한 펀드가 동종 유형에 비해 지속적으로 저조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설정액의 급격한 감소는 없었는지, 적절한 운용전략이 유지되기 힘들지는 않은지 신중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펀드를 교체해 줄 필요가 있다.
펀드의 공시 수익률과 실제 가입자의 수익률은 다르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펀드의 공시 수익률은 현금의 유출입을 제거한 수익률이지만, 가입자의 수익률은 일정 기간 납입한 투자 원금 대비 운용손익의 비율인 것이다. 따라서 같은 펀드로 운용했다고 해도 투자자마다 수익률은 달라질 수 있다.
또 한 가지, 자산가격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구성 내역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내게 맞는 포트폴리오도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나이에 맞는 포트폴리오 조정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DC형 상품과 비슷한 미국의 퇴직 연금 제도인 401(k)에 가입한 직장인들의 자산운용 패턴을 보면 ‘자산관리 주요 법칙’ 중 ‘100-나이 법칙’이 잘 적용되고 있다. 즉 20~30대에는 주식 및 주식형 펀드의 투자 비중이 70% 정도로 높다가 나이가 들수록 채권과 예금의 비중이 늘어나는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형준 <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운영부장 hj.choi@truefriend.c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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