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코는 올해 133년 된 명품 시계 브랜드다. 1881년 일본 도쿄의 작은 시계 수리점으로 시작한 세이코는 1895년 시계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 1950년대 독자적인 손목시계 무브먼트(시계 동력장치)와 이를 기반으로 한 독창적 디자인의 시계들을 선보이며 세이코만의 개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 탄생한 ‘그랜드 세이코’는 세이코가 글로벌 브랜드로 변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랜드 세이코는 하루 시간 오차를 -4~+6초 범위로 줄여 당시 스위스 고급 손목시계에 버금가는 정확성을 과시한 제품이다. 1968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시계 경연대회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최고 기계식(매케니컬) 손목 시계’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이코는 기계식 시계 분야에서 시계의 본고장 스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데 이어 시계산업 발전사에 한 획을 그은 대변혁을 주도하게 된다. 1969년 크리스마스에 세계 최초의 전자식(쿼츠) 손목시계 ‘세이코 아스트론’을 발표한 것이다. 출시 당시 세이코 아스트론의 가격은 45만엔으로, 도요타 자동차 한 대 값에 맞먹었다. 쿼츠 손목시계를 제조하는 기술이 그만큼 혁신적이고 독보적인 영역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이코는 이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전 세계 다른 업체에 개방했다. 기술 혁신에 안주하지 않고 쿼츠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했다. 1973년 오늘날 일반적인 디스플레이 방식인 6자리 표시 방식의 LCD 쿼츠 시계를 내놓은 것을 비롯해 TV 시계, 보이스 레코더 시계, 컴퓨터 시계 등을 세계 최초로 잇달아 선보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기계식 시계처럼 자가 발전이 가능한 쿼츠 시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1988년 ‘AGS’라는 이름의 세계 최초 키네틱 시계를 만들었다. 키네틱이란 시계를 찬 사람의 움직임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 시계를 구동하는 방식으로 배터리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친환경 기술로 평가받는다.
1977년 선보인 세이코의 독자적인 시계 구동 방식 ‘스프링 드라이브’도 오랜 R&D를 통해 일궈낸 성과로 꼽힌다. ‘영원 불변한 시계’를 목표로 28년의 연구와 600개의 견본 제작을 통해 완성된 기술이다. 스프링 드라이브는 하루 오차가 1초가량에 불과하고, 시곗 바늘(핸즈)이 물 흐르듯 움직이면서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세이코의 기술 연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2008년 세계 최초로 우주 유영 시에도 사용 가능한 시계를, 2012년에는 전 세계 39개 타임존을 모두 인식하는 GPS 솔라 시계를 내놨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관련뉴스